엉터리 개편안의 기원은 안철수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윤석열 정부의 학제개편안은 2017년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내놓았던 학제개편안과 꼭 닮았다. 당시 안철수 후보는 6-3-3제를 5-5-2제로 바꾸면서 입학연령을 6세에서 5세로, 고교 졸업연령을 18세에서 17세로 낮출 것을 공약했다. 아울러 과도기 4년간 1학년 구성을 12개월간 출생자가 아닌 15개월간 출생자로 하면 학제개편이 완료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안과 똑같지 않은가? 윤석열 정부안은 안철수 후보안의 영향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여론이 비등하면서 각종 비판론이 쏟아지고 있는데, ‘5세는 원래 초등학교에 안 맞는다’는 식의 주장은 삼가자. 제도는 구성하기 나름이어서 심지어 4세도 다수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라들도 있기 때문이다. 검토해볼 만한 비판론은 네 가지 정도이다.

첫째, 4년의 과도기 동안 해당 학년 학생 수가 25% 증가하므로 이들이 겪을 대입경쟁·취업경쟁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마침 출생아 수가 급속히 줄었기 때문이다. 연간 40만명대 중반을 꾸준히 유지하던 출생아 수는 2015년 43만8000명을 기록한 이후 급속히 감소했는데, 과도기 첫해 입학생인 2018년생은 2015년생 대비 25.5% 적고 이후는 더 적다.

둘째, 과도기 4년 동안 12개월간 출생자가 아닌 15개월간 출생자가 1학년이 되므로 학급 내 성장발달상의 격차가 더 커지는 문제가 있다. 이른바 ‘생일이 늦은 아이’가 뒤처질 걱정이 증폭되는 것이다. 다만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과도기를 4년에서 12년으로 늘리면서 학년 구성을 15개월이 아닌 13개월간 출생자로 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이러면 문제가 다소 완화될 수는 있을 것이다.

셋째,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비해 초등학교가 돌봄 기능에 있어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여성의 경력 단절이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런 참담한 현실을 알지 못하고 취학연령을 앞당기는 방안을 덜컥 발표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서야 종일 돌봄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이니 신뢰를 잃었다.

넷째, 교육과정 개편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며 그동안 교육현장에 상당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아무도 이 점을 제기하지 않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이것이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문제이며 기술적으로 보완하기도 어렵다. 왜 그럴까? 어릴 적 한 살 차이는 크기 때문에, 6세가 배우던 내용을 고스란히 5세가 배우도록 할 수는 없다. 초등 1학년용 교육과정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초 1에서 배우는 내용이 달라지면 초 2에서 배우는 내용도 달라지고 초 3, 초 4… 고3 교육과정까지 모두 개편해야 한다. 결국 6~18세용 교육과정은 5~17세용 교육과정과 전체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 교육과정을 과도기 중간부터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과도기가 12년일 경우 교육과정 개편에 무려 18년이 걸린다. 일종의 꼼수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손대지 않고 초·중 교육과정만 바꾼다 해도 15년이 걸린다.

안철수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학제개편에 대한 소신을 드러내며 “지금 논의가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1년 낮추네 마네 하는 지엽적인 문제에 머무르는 것이 안타깝다”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닐뿐더러, 나는 5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시뮬레이션을 못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이 더 안타깝다. 2017년의 학제개편안이 당시 누구에게 하청되어 얼마나 졸속으로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

반대론이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결국 윤석열 정부의 KO패로 끝날 듯하다. 하지만 나는 이번 기회에 두 가지 주제에서 건설적 토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초등 돌봄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해보자는 것, 그리고 ‘5세 의무교육’을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5세 의무교육’의 1안은 미국의 많은 주(州)처럼 유치원 마지막해를 의무교육에 포함하는 방안이고 2안은 영국·호주·뉴질랜드·아일랜드처럼 초등학교에 5세에 입학하는 대신 고교 졸업까지 13개 학년을 두는 방안이다. 한국에서 2안을 채택한다면 1~12학년은 그대로 두고 초등 0학년을 점진적으로 도입하면 될 것이다. 1안의 단점은 5세에 유치원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이미 3·4세부터 형성되어 있는 또래집단에 끼어들어가야 하고 또 바로 1년 뒤에 초등학교로 옮겨야 한다는 점이고, 2안의 단점은 기존의 유아교육/초등교육 경계를 교란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른들 기준으로야 당연히 1안이 좋겠지만, 아이들 기준으로는 2안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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