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장애인은 왜 그리 친절했나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2016년 출간한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의 입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드러낸 책이다. 노량진에서 수십 명과 인터뷰를 했는데, ‘공직에 대한 열의’가 어릴 때부터 있었다는 식의 말은 당연히 등장하지 않았다. 저마다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은 참으로 안쓰러웠다.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대기업을 퇴사하고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도 많았다. 기업이 노동자를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그들은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홍길동씨를 소개받았는데, 나는 기업의 갑질과 장애인 차별을 생생하게 증언해줄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이전 회사생활은 별문제가 없었다. 홍길동씨는 회사와 동료로부터 인기가 만점이었는데, 가장 일하고 싶은 동료로 뽑혔다는 감사패가 집에 수두룩했다. 이 정도로 좋은 인간관계인데 왜 퇴사를 했냐고 물으니 피식 웃으며 홍길동씨가 말한다. “인간관계를 좋게 맺지 않으면요? 저는 항상 좋은 사람이어야 해요.”

그는 입사 이후 시시때때로 “이번에 특별히 채용된”이라는 수식어로 소개되었다. 우리 회사는 배려가 대단하다고 말해야만 하는 공개 석상에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참여해야 했고 홍보영상에서는 차별이 없는 회사라면서 웃어야 했다. 신입사원 연수 때마다 이곳은 평등하니 능력을 맘껏 발휘하라는 강연을 하는 건 의무였다.

유명인사가 될수록 홍길동씨의 업무는 흐트러졌다. 나태해졌다는 게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업무도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단호하게 끊어야 하는 부탁이지만, 그러지 못했다. 화를 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그러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특별히 배려받아 회사 다니면서 왜 저래?’라는 분위기가 순식간에 흐르기 때문이었다. 비장애인의 철두철미한 개인주의는 까칠하다, 차갑다 정도의 개인적 기질로 해석되었지만 홍길동씨의 같은 행동은 은혜도 모른다면서 거칠게 다루어졌다. 갑작스럽게 장애인 채용이 특혜 아니냐는 갑론을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니 그는 늘 친절했고, 다정했다. 그러지 않아서 벌어질 일이 두려워서.

퇴사를 결심한 결정적인 사건도 훈훈함이 가득했다. 회사가 장애인용 화장실을 새롭게 만들었는데, 이를 축하하는 자리에 환한 웃음으로 참석한 다음날 홍길동씨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어떤 비장애인도 회사 화장실 때문에 감사하진 않는다, 노련하게 살아남는 일에 너무 지쳤다는 글은 개인 일기장에 남겼다. 자신의 태도가 투쟁하는 장애인을 향해 ‘본인이 잘하면 주변에서 관대하게 대해주는데 왜 저래?’라는 혐오로 이어지는 연료가 되는 것도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홍길동씨가 떠오른 건 동생이 자폐인 친구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다. 지인은, 장애가 천재성으로 드러나는 서사에 기초한 ‘그래도 특별한 능력 없어?’라는 무례한 질문을 영화 <레인맨> 이후 짜증 날 정도로 듣고도 웃으며 살았다. 발끈한들, 좋은 의도에도 정색한다는 프레임을 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드라마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을 SNS에 남겼는데 ‘훈훈한 내용을 괜히 꼬아서 보네’라는 반응부터 시작해 ‘장애가 벼슬이냐’는 익숙한 벽과 마주했다. 이게 드라마의 제작 의도는 아니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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