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검찰과 절연해야 산다읽음

이중근 논설주간

윤석열 대통령, 요즘 귀가 무척 간지러울 것 같다. 윤 대통령 당선에 앞장선 언론들까지 비판 대열에 가세해 더 이상 말 보태기도 민망하다. 그야말로 시민이 나라와 대통령을 걱정하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급락하는 속도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더 위험한 것은 추락의 구조와 요인들이다. 지금은 윤 대통령과 정부, 당이 한꺼번에 위기에 빠져든 여권의 총체적인 혼돈이다. 셋 중 어느 한쪽도 추락 속도를 늦출 능력이 없다. 노무현 정부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도 이런 정도는 아니었다.

이중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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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앞세운 ‘공정과 상식’은 이미 허언이 되었다. 취임사에서 비판한 우리 사회의 ‘반지성주의’ 행태를 스스로 시연하고 있다는 비판은 진보진영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경찰 제도에서부터 탈원전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간여하는 전 분야에서 퇴행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하다 하다 1980년대 용공 조작 및 프락치 공작의 공포까지 되살렸다. 친·인척과 부인 김건희 여사의 지인, 그리고 상대방에게 독설만 날릴 줄 아는 극우 인사들을 대통령실에 줄줄이 들여놓은 것은 차라리 가볍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전언을 들어보면 ‘근자감’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윤 대통령과 측근들은 여전히 모든 일에 대해 근거 없이 자신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현실과 너무나 달라서 듣는 사람이 오히려 놀랄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다시 걱정에 빠져들게 된다. 윤 대통령과 주변은 작금의 지지율 하락을 신경은 쓰겠지만, 절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위기가 될 것이다. 시민들의 불만은 아직은 지지율에만 반영돼 있을 뿐, 가시적으로 표출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이 위협받는다는 위기의식이 커지면 시민들은 곧바로 폭발한다. 주가에 이어 문재인 정부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민들이 사는 집값이 먼저 더 빨리, 큰 폭으로 떨어질 것이다.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속에 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영끌’과 ‘빚투’족들이 방역이나 또 다른 민생 변수에 떠밀리면 그들의 원성은 감당하기 어려운 폭탄이 될 것이다.

최근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선배와 윤 대통령과 가까이 지냈던 전직 검사를 차례로 만났다. 두 사람은 윤 대통령의 학습 능력을 신뢰한다며 지켜보라고 하면서도 이구동성으로 끝까지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윤 대통령의 독단적 스타일을 걱정했다. 지지율을 회복할 비법 같은 것은 없다. 지지율 회복이든 국정 수행이든 정석대로 하나씩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견해가 다른 여당의 한쪽을 아우르는 것은 물론 야당과도 협력해야 한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매달리는 편법 통치는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더디고 힘들더라도 야당을 설득하는 정상적인 통치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윤 대통령 자신부터 그 과정을 체득할 필요가 있다. 오는 28일 선출되는 민주당의 새 지도부와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게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그제 휴가에서 돌아오면서 “선거과정, 인수위, 취임 이후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며 “국민의 뜻을 세심하게 살피고, 늘 초심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인적·정책 쇄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정책을 쇄신하고 경제·민생을 챙기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반면, 인사 혁신과 소통은 마음만 먹으면 바로 가능하다. 정무적 조언이 어려운 관료 출신 김대기 비서실장부터 바꿔야 한다. 그리고 검찰 출신들과 알량한 법지식을 자랑하면서 민심을 무시하는 장관들을 내쳐야 한다. 윤 대통령의 선배 검찰총장도 관료·검사들을 보좌진으로 대거 기용한 것을 우려했다. 윤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생각이 같은 사람들만 주변에 있는 것이다. 지난주 윤 대통령은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면담할 지를 놓고 우왕좌왕했다. 한·미 동맹을 위해 만나야 한다는 쪽과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만나선 안 된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섰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야 한다. 순혈주의는 위험하다. 국정 경험이 없는 윤 대통령에게는 치명적이다. 윤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목소리, 숨소리까지도 놓치지 않고 잘 살피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취임 100일에 맞춰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와 함께 쇄신을 선언하고 재출발하는 게 옳다. 임기 중 20분의 1이 지났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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