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받기의 어려움

오은 시인

받는 일은 기쁜 일이다. 칭찬을 받는 일도, 상을 받는 일도, 선물을 받는 일도 흔한 일이 아니어서 더 그렇다. 뜻밖의 경우일 때가 많아서 놀라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 또한 기쁨을 더욱 벅차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그러나 받는 일도 쉬운 것만은 아니다. 정도가 지나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이걸 받아도 될까, 이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 하는 생각은 짐이 된다. 부담이 된다. 주고받는 일은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은 시인

오은 시인

주는 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건넬 때 신경을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상대의 취향은 물론, 그가 하고 있는 일이나 가족의 형태 또한 고려해야 한다. 대가족이 사는데 케이크 한 조각을 보내는 것은 주면서도 겸연쩍은 일이고,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에게 스테이크 쿠폰을 보내는 건 받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다. 본의 아니게 어긋나는 마음 덕에 주고도 편치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베푼 호의 너머에는 상대의 사정이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나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잘 보이고 싶은 자리라 하더라도 무리를 해서 한 선물은 속상함으로 돌아온다. 당장 내 코가 석 자인데 코가 납작해질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모두에게 선심을 쓰고 싶은 너른 품을 지녔을지라도 우리의 재화는 제한되어 있다. 신중하게 고른 선물을 받고 상대가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을 때도 실망스럽다.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직접 물어보기 곤란한 경우에는 애가 끓는다.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를 뺏긴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주고받는 행위에는 적신호가 켜진다. 이는 잘 아는 사이나 친한 사이보다 적당히 아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지인 중 하나는 사람들과 주고받은 것을 정리해놓은 스프레드시트가 있었다. 연도별, 월별, 일별로 정리된 파일을 보며 살면서 주고받는 일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의 철두철미한 정리법에도 놀랐는데, 그도 그럴 것이 축의금 및 조의금부터 커피 쿠폰 한 장까지도 빠짐없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주고받은 흔적의 기록이 아니었다. 흡사 재정 담당 관리자의 파일 같았다. 그는 이렇게 해두면 나중에 상대에게 선물할 때 아이템을 고르고 가격대를 맞추는 게 쉬워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렇게까지 하진 못할 것 같아. 무엇보다 그러기가 싫어.” 아이템과 가격대라는 말이 머리 한구석에 돌부리처럼 삐죽 솟아나 있었다. 그는 콧등을 긁적이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에서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무언으로 채근하는 것 같았다. 누구 코에 붙이겠는가 싶더라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사람을 대할 수는 없었다. 주고받기의 어려움을 수치화하기는 싫었다.

언젠가부터 준 것을 의도적으로 잊으려고 애쓴다. 주었던 만큼 받기를 바랄까 봐 걱정되어서다. 물론 상대가 “그거 아직 잘 쓰고 있어”라고 말할 때 대답을 얼버무릴 때도 있다. 편한 사이에는 무엇을 주었는지 잊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그것이 마음을 더는 일이 아니라, 다치지 않기 위함임을 전하면서 말이다. 받은 일은 쉬 잊기 어려운데, 먹는 것이 아닌 이상 그 물건은 늘 주위에 있기 때문이다. 받는 이를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고, 주는 이에게 “뭘 이런 걸 다”가 아닌 “고마워”라고 분명하게 전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고받는 일은 어렵다. 어려우니 값질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 보낸 편지가 상대에게 잘 당도했을 때의 안도감을 기억한다. 답장을 기다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저 내 마음을 전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주는 것만으로 그저 기쁠 때, 받는 마음이 순수한 기꺼움일 때, 주고받는 일은 어렵지만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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