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처리의 외주화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식사시간에 배달음식을 시키기 위해 휴대폰을 여는 일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손가락으로 장을 보면 다음날 아침 각종 식재료가 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요즘은 세탁물도 문 앞에 내놓으면 바로 다음날 깨끗하게 세탁돼 문 앞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정말 편리함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 살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회색인간들과 거래를 시작한 것 같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심지어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는 업체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지정된 상자에 이런저런 구분 없이 쓰레기를 담아두기만 하면 깨끗한 빈 통으로 돌려준다고 한다.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구분하고 내용물을 비우고 씻고 말리고 라벨을 떼고 재질을 분리할 필요도 없이 그저 한데 모아 배출하기만 하면 된다.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 먹는 사람에게 추천한다는 후기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얼핏 신세계처럼 느껴지는 이 서비스는 옛날사람인 나에게는 과거로의 회귀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그랬다. 학교나 아파트를 중심으로 열심히 폐지를 모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쓰레기를 분류 없이 한곳에 그냥 버렸다. 주기적으로 비워지는 쓰레기통을 보며 내 손을 떠난 쓰레기를 고민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무렇게나 손쉽게 버려도 되는 시스템을 포기하고 지금처럼 복잡한 체계를 마련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내 책임으로 내 손안에 있을 때 의무와 책임을 다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대신 정리해서 버려주는 서비스는 과연 시간을 사고파는 것일까? 조금 오래된 자료긴 하지만 2015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쓰레기 분리 배출을 주당 1.7회 하고, 회당 12분을 쓰고 있었다. 차라리 돈을 주고 사야 할 만큼, 일주일에 20분이라는 시간이 간절한 것일까. 아마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시간이 간절해서라기보다 편리함이 좋아서 구매했을 것이다. 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먹은 야식 그릇의 붉은 기름기를 내가 닦아낼 필요가 없어서, 내가 마신 음료 페트병의 라벨을 내가 떼어낼 필요가 없어서, 배달음식에 으레 따라오는, 손도 대지 않은 각종 반찬과 소스를 내 손으로 처리할 필요가 없어서 사람들은 열광한다. 쓰레기 처리를 외주화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내가 만든 쓰레기에 대한 책임을, 내가 만든 쓰레기를 보며 느껴야 할 죄책감을 외주화하는 것이다.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재활용품 분리 배출에 ‘매우 노력한다’는 사람은 꾸준히 늘어나 현재 53%나 된다. ‘약간 노력함’을 포함하면 무려 93.6%에 이른다. 기후위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자연과 지구에 해로움을 덜 끼치는 삶의 방식이 주목받는 지금, 한편에서는 생활쓰레기 처리 대행업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우려스럽다. 업체들은 말한다, 쓰레기 없는 깨끗한 삶으로 돌아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이고, 쓰레기에 대한 마음의 짐은 계속 갖고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죄책감은 내가 만들어낸 쓰레기를 내가 마주할 때야 느낄 수 있다고. 깜깜한 새벽,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내 쓰레기를 마법같이 없애준다면 그것은 쓰레기 없는 삶일까, 내가 남긴 흔적에 눈감아버린 삶일까.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