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년,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읽음

황희경 중국철학자·전 영산대 교수

오는 24일은 한·중 수교 30주년이다. 수교가 되던 1992년, 나는 한 재단에서 파견한 중국학 연구원으로 베이징에 체류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 이미 10년이 넘었지만 사회주의 ‘풍속’이 엄연히 존재했다. 영화 <버닝>의 한 장면에 나오는 것처럼 국영상점에서는 점원이 거스름돈을 던져주는 일도 흔했다. 환율제도도 공식 환율과 시장 환율이 다른 이중환율제를 선택하고 있었다. 시장 환율은 요동치는 일이 흔했기 때문에 암시장에서 적절한 순간에 높은 환율로 달러를 인민폐와 바꾸는 일은 중국 체류 외국인에게 중요한 일상이었다. 생활은 낙후했지만 만나는 중국인들 대부분은 순박하고 친절했으며,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한국에 대해서 관심도 높고 좋은 인상도 가지고 있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만드는 개인적 추억이다.

황희경 중국철학자·전 영산대 교수

황희경 중국철학자·전 영산대 교수

수교 이래 양국 관계는 전체적으로 볼 때 호혜적이고 우호적이었다고 생각한다. 2017년 사드 사태와 같은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사이 중국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고, 우리의 제일의 무역 상대국으로 변신했다. 최근 대중국 무역적자가 몇 달 연속 발생하여 경고음이 들리지만 수교 이래 우린 줄곧 중국을 상대로 커다란 흑자를 기록했다.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는 데 중국과의 경제 교류가 큰 기여를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양국 관계는 협력 동반자 관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꾸준히 심화되고 격상되어 왔다. 우려스러운 것은 근자에 들어 미·중 갈등의 영향으로 일각에서 반중·혐중적 분위기가 확대되고 있는 일이다.

최근 화제가 된 <짱깨주의의 탄생>에서 잘 분석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에 관한 우리 언론 보도를 보면, 일반 시민이 중국에 합리적인 접근을 하기가 구조적으로 힘들게 되어 있다. 이는 비단 중국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중국의 한 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서구 언론의 중국에 대한 보도는 60% 이상이 부정적 뉴스라고 한다.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우리 언론도 이런 서구 언론이 설정한 틀과 어젠다에 부지불식간에 종속되어 중국에 관해 뭔가 비판적 보도를 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처럼 된 지도 꽤 된다. 중국을 우리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부상에 질투와 두려움을 느끼는 서구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작은 나라도 자세히 보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듯이 오랜 역사와 거대한 국토, 그리고 다양한 민족이 뒤섞인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엔 “잠 못 이룰” 정도로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 놀라운 지혜와 제도적 장점도 많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중국이 세계가 놀라는 부상을 이룩할 수 있었겠는가? 이 시대를 만약 후세의 역사학자가 기록한다면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중국의 부상과 서구의 쇠락을 거론할 것이라고 많은 전략가와 역사가들이 예측한다. 도대체 중국은 어떤 나라이기에 여러 버전의 중국 붕괴론을 붕괴시키며 부상을 이룩할 수 있었으며, 우리는 어떻게 중국을 바라봐야 하는가?

헨리 키신저가 말하는 것처럼 중국은 매우 특이한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도도한 미국 예외주의 시대에 냉정한 키신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예외주의의 나라가 중국이다. 유구하며 연속적인 문화를 가졌으면서도, 삼장법사처럼 진리를 구하러 다녔지, 자신의 것을 보편적이라고 선교하지 않는 나라가 중국이다. 어떤 의미에서 유럽연합이 도달하려는 세계를 2000여년 전에 도달해서 유지한 나라, 로마제국과 샤를마뉴 대제의 유럽과 달리 아직까지 분열되지 않고 이어져 온 대륙의 나라, 루시앙 파이가 말한 것처럼 민족국가라기보다는 하나의 문명인 나라가 중국이다. 20세기 중국의 역사가 ‘천하’를 민족국가 속에 욱여 넣는 지난한 과정이었다면 이제 문화의 자각을 바탕으로 민족국가에서 문명국가로 변신하려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의 부상은 무엇보다 이런 문명의 힘으로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엊그제가 광복절 77주년이었다. 이념을 초월해서 국민당과 공산당이 ‘합작’해 중국이 항일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광복군과 조선의용군에게 지리적 공간을 내어주고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겠는가. 수교한 지는 30년이 되었지만 우리와 중국은 냉전을 떨치고 다시 만난 오랜 이웃이며 동아시아의 운명공동체이다. 수교 30주년을 맞아 양국 간의 우호가 더욱 굳건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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