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사람이 미워졌습니까읽음

박선화 한신대 교수

며칠 울적하고 어수선했다. 가슴 아픈 수재 소식에 더해 끝없이 등장하는 망언, 망동, 분노와 조롱의 뉴스들이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어서다. 원망과 미움의 감정에 구속되는 것은 누구보다 내 자신의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지만, 참담한 뉴스와 들끓는 SNS 속에서 종종 길을 잃는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박선화 한신대 교수

네덜란드의 저널리스트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뉴스의 위험성이 마약이나 독극물 이상임을 이렇게 강조한다. “잠시 상상해 보자. 중독성이 매우 강한 약이 시장에 출시되어 모든 이가 중독되었다. 약의 증상은 불안, 기분 저하, 무기력, 경멸과 적대감 같은 것들이다. 이런 위험한 약을 아이들도 복용하는 것을 허용해야 할까. 정부가 합법화할까. 답은 예스다. 오히려 많은 보조금을 받으며 대량으로 배포된다. 그 약이 뭐냐고? 바로 뉴스다.”

브레흐만은 세상의 거의 모든 뉴스들이 인간의 어두운 부분에 과도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고 지적한다.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태풍 카트리나로 도시가 위기에 빠졌을 때, 뉴스들은 폭도와 약탈, 강간과 총격사건 등을 연이어 쏟아냈다. 은폐되었던 추악한 민낯들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말 그대로 무간지옥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시 점검해보니 많은 소문이 지나치게 왜곡·과장되어 있었다. 피난처의 사망자 중 다수는 자연사였다. 일부 약탈도 있었으나 평상시의 범죄율과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도왔고, 스스로 구조대를 만들어 필요한 물품이나 약품들을 나눴다. 자발적 자선과 용기가 넘쳐났다. 뉴스들의 공포심 자극은 선한 행동을 늦추고 방해하는 역할에 더욱 기여했다.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선동적 뉴스들로, 접종을 방해하고 감염·사망률을 높인 한국 언론의 가짜뉴스들과도 비슷하다.

타인에 대한 끝없는 의심을 생성하는 것은 엘리트, 지식인도 못지않다. 브레흐만은 20세기의 명저로 손꼽히는 <파리대왕>이 지나치게 비관적인 작품이라 생각한다. 윌리엄 골딩의 소설적 가정과 달리, 실제로 남태평양에서 일어난 소년들의 무인도 표류생활을 추적한 결과는 충분히 지혜롭고 현명했다는 것이다. 레베카 솔닛 역시 “엘리트들이 늘 타인을 의심하는 것은 사람들의 본성이 자신처럼 이기적이라 착각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자주 무력에 의존하려 한다”고 꼬집는다.

공포와 반목을 부추기는 이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불신과 이기심이 점차 과열되는 세상. 이에 대한 우려와 대안으로 인간의 선한 본성을 조명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그들도 우리도 모를 리 없다. 인간은 선하지만도 악하지만도 않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유동적 존재라는 것. 역사 속에 엄연히 존재했고 여전히 일어나는 무수한 잔혹사들을.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인간이 지향하고 바라는 것은 사랑과 연대라는 점이다. 재해를 방관하고 망언, 망동을 일삼는 사람들보다는, 이를 비판하고 함께 슬퍼하며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는 이들이 천배만배 많다는 것이다. 인간세계가 천국은 못되지만 지옥을 획책하는 사탄 역시 사람을 믿지 못하는 이들의 불안과 외로움이 만든 상상물일 뿐이다. 현실과 한계를 직시하되 서로의 삶을 음으로 양으로 지키고 보호하려 노력해온 압도적인 다수에게 더 많은 시선을 보내야 건강해진다.

세상에 점점 희망을 잃고 불안하고 무기력해지며 나와는 다른 이들에게 적대감이 커지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되돌아보자. 성찰과 대안 제시가 있는 성숙한 의견보다 분노만을 부추기는 의견들에 몰입되어 있지 않은지. 무책임하고 선동적인 뉴스들과 자제력을 잃은 SNS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지는 않은지. “모든 이의 가슴에는 선한 늑대와 악한 늑대가 있고, 둘 중 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내가 먹이를 주는 늑대다”라는 체로키 인디언들의 우화를 되새길 때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부활절 앞두고 분주한 남아공 초콜릿 공장 한 컷에 담긴 화산 분출과 오로라 바이든 자금모금행사에 등장한 오바마 미국 묻지마 칼부림 희생자 추모 행사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황사로 뿌옇게 변한 네이멍구 거리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