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폭염이 들춘 노동자 인권읽음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올여름 유럽은 기록적인 폭염을 마주했다. 지난 7월, 영국 런던의 최고기온은 40도에 달했으며,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등 대륙 유럽 역시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각지에서 열사병으로 수천명이 사망했고, 야외 현장 노동자들의 사망 사례들도 연일 보도되었다. 폭염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쓰러지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하자 유럽 내 노동조합과 유럽노동조합연맹(ETUC)은 일터 내 최고온도 설정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상당수가 작업장의 최고온도를 설정하지 않아 노동자의 건강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초국적 차원의 법 제정을 촉구했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일터 내 최고온도와 관련한 법을 두고 있지 않지만, 고온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한 작업환경을 위한 고용주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스페인은 특정 직종에 한해 최고온도 기준을 두고 있으나 이번 폭염으로 인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해 기준 상향과 범위 확대를 고민하고 있다. 독일은 사업장기술지침을 두어 실내 허용온도 및 단계별 대응조치 등을 규정하여 고온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보호에 신경 쓰고 있다. 영국은 현재 작업장 최고온도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어 최대 노조인 ‘UNITE’가 고강도 작업을 하는 일자리의 경우 27도, 실내 일자리의 경우 30도로 최고온도를 유지할 것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 노총(TUC)은 일터 내 최고온도 설정뿐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의 조치를 권고하는 정부 방침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정책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최근 폭염, 이상고온 등 기후변화로 노동환경 변화가 나타남에 따라, 이로 인한 노동시장 내 문제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와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폭염으로 고온 환경이 지속될 경우, 전 세계 노동시간이 2% 이상 줄어 약 8000만명 정규직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노동력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라 지적했다. 농업과 건설업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업종으로 꼽혔다.

한편 학계에서는 고온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생산성 약화를 주장하는 연구 결과도 다수 발표되었다. 특히 노동자의 피로감, 졸음, 집중력과 의욕 감소에 따른 능률 저하가 눈에 띄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최근 연구자들은 고온 환경으로 인한 노동자 건강의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반적으로 폭염 등 고온 환경은 모든 노동자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생리적 특성에 따라 열에 취약한 고령 노동자, 소득이나 지위 불안정성으로 고온에서 일해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노동자 등이 작업장에서 건강권을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유럽 폭염으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들 역시 대부분 고령, 실외 노동자였다는 점은 앞선 연구들을 뒷받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올해부터 노동자들의 열사병 등 온열질환 예방에 힘쓰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온열질환 산재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기후변화로 인해 생겨날 일자리 변화, 노동력 손실 등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 대책 마련 역시 필요하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부활절 앞두고 분주한 남아공 초콜릿 공장 한 컷에 담긴 화산 분출과 오로라 바이든 자금모금행사에 등장한 오바마 미국 묻지마 칼부림 희생자 추모 행사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황사로 뿌옇게 변한 네이멍구 거리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