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한계’, 그 후 50년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지금부터 딱 50년 전인 1972년 3월2일, 로마클럽의 유명한 <성장의 한계>가 발표되었다. 이 책은 세계적 반향을 불러왔고 환경 문헌의 고전으로 자리매김되었다. 그런데 ‘고전’이라는 칭호는 마치 <자본론>이나 <국부론>이 그렇듯이, 실은 사람들이 읽지는 않고 인용하고 비판하는 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이나 자본가 타도를 주장한 게 아니라 자본의 본성을 고찰했다. <성장의 한계> 역시 성장 자체의 끝을 말한 게 아니지만 사람들은 쉬이 오해하고 단순한 종말론의 하나로 여긴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이런 오해는 특히 한국에서는 제목 번역 탓도 있었을 것 같다. 엄밀하게 보자면 영어 제목(Limits to Growth)은 성장의(of) 한계가 아니라 성장에 관한 또는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한계들이다. 이 책의 내용 역시 자원이 고갈되거나 식량 생산이 급락하여 성장이 멈춘다는 게 아니라, 다섯 가지 주요 변수가 상호 작용하면서 과잉과 고갈의 피드백 속에 생태계와 사회에 큰 충격과 위기가 예상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성장의 한계>는 냉담한 반응에 직면했다. 3년 전인 1969년에 인간이 달에 착륙하고 핵발전소가 곳곳에서 지어지던 시절이었다. 동서 냉전이 심화되었지만 양 진영 모두 끝없는 성장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세계 기아를 해결하고, 지구가 쓰레기로 덮이면 우주 식민지라도 개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정치가들과 경제학자들은 이 책의 방법론적 오류를 지적하고 인간의 창의성과 역량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저자들은 이 책이 구체적인 예측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추세에 비춘 미래의 전망이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리고 50년이 흐르면서 그들이 예측했던 주요 경향들, 즉 자원 위기와 일인당 식량 생산 정체, 그리고 기후위기가 하나둘씩 현실로 드러났다. 이 책의 불우한 처지는 ‘카산드라의 저주’에 비유되곤 한다. 카산드라가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을 얻었지만 그 말을 사람들이 믿지 않도록 저주를 내린 게 아폴로였으니, 아폴로 11호가 <성장의 한계>에 저주와 같은 효과를 발휘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들의 핵심 메시지는 생산이 있으면 그만큼 폐기가 있고,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적절한 시점에서 인식하거나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지구라는 그릇의 용량은 정해져 있지만 인류는 기발한 마술을 통해 그 한계를 돌파해 왔다.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 이용, 세계화된 시장과 광고, 심지어 공황을 해결한 전쟁조차 그런 마술들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팬데믹과 기후 붕괴, 심화된 불평등이 결합된 만성적 위기를 대가로 얻었다. 성장이 끝나는 게 아니라 성장에 관한 한계와 위기들이 더욱 격렬하게 계속된다.

한국의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30년 뒤의 인구와 산업 생산, 에너지 소비량을 불변으로 가정하고 검증되지 않은 지구공학 기술을 해법으로 포함한다. 줄어드는 인구를 억지로 늘리고 핵폐기물을 돌려막기 하며 커다란 지하터널을 만들어 홍수를 해결해 보려 한다. 그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하나의 예측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만능도 아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예측과 상상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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