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플랫폼정부와 정보보호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권헌영의 사람과 디지털] 디지털플랫폼정부와 정보보호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모든 데이터가 물 흐르듯 연결되는 디지털플랫폼정부 정책의 사령탑으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출범한다. 여러 추측이 난무하고 백가쟁명식 제안이 쏟아지는 가운데 일단 정책 거버넌스의 상위구조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고 기술이나 서비스 및 관련 산업에 조예가 깊은 고진 위원장이 먼저 임명된 이후 활발한 소통 행보를 통해 정책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점도 현재까지는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2일 출범하는 이 위원회는 정부위원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등 3개 부처 장관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등 장관급 4명과 민간위원 18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들은 6개의 분과에 고루 배분되어 전문 의제를 다루는데 인공지능, 인프라, 서비스, 일하는 방식 혁신, 생태계 및 정보보호 등의 전문 분과가 설치된다. 각 분과에 참여하는 위원들은 해당 분야에서 오랜 기간 전문성을 발휘해 온 이들인데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각 분과위원회에 추가로 위원 선임을 할 예정이라고 하니 새롭게 참여하는 전문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플랫폼정부 정책의 방향성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진 위원장은 젊고 역동적인 일꾼들이 위원회에 직접 참여하도록 하고 그간 전자정부, 정보통신 정책, 정부 혁신 등 관련 정책을 이끌었던 이들을 진영과 관련없이 모셔서 자문단을 운영하겠다는 포부도 밝히고 있다. 정치권이 편 가르기와 자극적인 비방으로 국민들의 걱정을 자아내는 상황인데 디지털 정책 분야에서라도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국민 통합에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검증과 인증 그리고 보증이 핵심

그간 디지털플랫폼정부의 개념이 모호해서 정책 범위와 대상 및 수단을 정하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이 있어 왔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에 출범하는 위원회의 조직구조를 살펴보면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플랫폼정부 정책은 전자정부와 디지털정부를 넘어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발맞추어 정부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이를 플랫폼 전략을 통해 민·관·학·연·산 등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여 사회 및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정부혁신의 모델로 한발 더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정책과제를 설정하고 언제까지 어떤 수단을 동원하여 그 과제를 해결할 것인지, 그리하여 국민과 공동체에 어떤 성과와 가치를 구현할 것인지를 밝히는 숙제를 먼저 받은 것이다. 이 일은 연말까지 이루어지고 시스템 사업이나 정책과제화도 동시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대통령은 적어도 내년 초에는 국민 앞에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디지털플랫폼정부’라는 새로운 정책 명칭이 어떤 것인지와 어떻게 대한민국이 이런 개념을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세계적 모델로 만들어 갈 것인지를 밝히게 된다. 이 작업은 대통령의 미래 정부 구상은 물론 시대적 소명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구해야 하는 일이고 새로운 기술이나 방법이 있다면 정부와 민간은 물론 국내외를 가릴 일이 아니다.

시민들에게 디지털플랫폼정부에 대해 물으면 대체로 디지털 기술로 뭔가 나를 위해 좋은 서비스를 해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표현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대감을 갖는 분들에 못지않게 많은 이들이 ‘민관을 넘나들고 모든 데이터가 디지털플랫폼을 통해 흘러다니면 위험한 것 아닌가’ ‘안 그래도 개인정보 관련 유출사고가 많고 피싱이나 스미싱 등 2차 사고로 피해를 입은 이들이 주변에 늘어나는데 걱정이 된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인지상정인 걱정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가 국민에게 밝은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과 더불어 이러한 국민의 불안을 신뢰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한국이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니다. 우리 주민등록 정보를 모두 디지털화한 것이 1990년대 초다. 이 디지털 전환사업은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초대형 데이터 구축사업이다. 당시 시민들은 군사정권의 디지털 시민감시를 우려하고 저항하는 논의를 시작했고 그 대응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었다. 모든 개인정보 디지털 파일을 등록·관리하고 엄격하게 통제하는 입법적 조치가 있고 나서야 한국 전자정부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제도가 있어도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이어졌고 최근에는 공무원 및 공공기관 직원의 개인정보보호 처리 업무 소홀과 관행도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진정한 시민 결재 시대 열어야

위원회가 관련 제도의 정비를 약속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제도만 갖고 안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정보를 잘 보호하고 있다는 믿음을 실제 현장에서 심어 주어야 한다. 이런 일을 위하여 정보보호 전문가들이 노력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 강화 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채택한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다. 개인정보를 처리하면서도 개인정보를 식별하지 않는 기술, 전송단에서 정보를 자동으로 암호화하여 유출되더라도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없도록 하는 기술, 보다 쉽게 개인정보의 적법한 처리권한을 확인할 수 있는 인증기술 등은 모두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비식별조치를 통해 개인정보의 활용성을 높이는 합법적 기술과 서비스는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시민이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정부와 신뢰하는 시장의 인증제도이다. 검증과 인증 그리고 보증 정책이 신뢰 확보 정책의 중요한 수단이다.

시민 입장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는 내가 직접 내 개인정보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정보통제서비스는 ‘마이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제는 제도로서의 마이 데이터가 아니라 이를 플랫폼서비스로 구현하여 시민이 직접 자신의 개인정보와 자신을 둘러싼 서비스를 ‘클릭’을 통해 허락하거나 금지하는 등의 진정한 시민 결재 시대를 열어야 한다. 국민 입장에서 디지털플랫폼정부는 남이 구현해 주는 걸 수동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여하여 함께 만드는 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다. 우리가 손만 내밀면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이나 서비스가 가능한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우리는 이미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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