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예산’ 축소…소리만 요란한 ‘윤석열 복지’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
[최현수의 사람을 생각하는 정책] ‘약자 예산’ 축소…소리만 요란한 ‘윤석열 복지’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예산안이 발표되었다. 이미 예상됐던 것처럼 예산 편성방향이 확장 재정에서 건전 재정 기조로 전환됐지만, 취약계층 중심의 ‘약자 복지’를 강조한 것을 고려하면 여전히 아쉽다. 물론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편성됐던 예산을 조정한 보건 분야(보건복지부 예산 기준 전년 대비 0.6% 증가) 및 고용 분야(고용노동부 예산 기준 전년 대비 4.3% 감소)를 제외하면 보건복지부 소관 사회복지 분야는 약 92조원으로 전년 대비 약 11조4000억원(14.2%) 증가했다.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

그러나 ‘약자 복지’란 생소한 표현을 통해 강조했던 저소득 취약계층 지원 예산안에 새 정부의 정책 의지는 얼마나 반영된 것일까? 긴축 재정 기조로 재정지출을 효율적으로 줄이더라도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에 대해 보다 두껍게 지원한다는 정책 방향이 실질적으로 반영된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우선 복지부 소관 사회복지 분야 예산 증가액에 해당하는 약 11조4000억원 중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공적연금 부문(약 5조7000억원 증가, 전년 대비 약 18.0% 증가)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당 부분 개혁 논의를 앞둔 현행 국민연금 제도와 인구 고령화에 의한 연금 수급대상과 연금급여액 확대로 정부의 정책 의지와 상관없는 자연증가분이다.

사회복지 분야 증가액 중 약 23.3%를 차지하며 전년 대비 약 2조7000억원(약 13.0%) 증가한 노인 부문 역시 대부분 기초연금 인상에 따른 자연증가분이다. 기초연금법 제5조 제2항에 따라 기초연금은 매년 통계청장이 고시하는 소비자물가변동률을 반영하여 조정한다. 이에 따라 2023년 예산안에서도 기초연금 수급대상 노인 증가(약 37만명 확대된 665만명)와 최근 고물가로 인한 물가상승률(4.7%) 반영에 따라 30만7500원에서 32만1950원으로 인상된 급여액, 국고보조율 조정에 의한 자연증가분이 전년 대비 약 2조4000억원(약 15.0% 증가)에 이른다. 이것은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인상한다는 국정과제 이행 계획에 따른 단계적 추진이 아니라 단순히 법령에 따라 기초연금 급여액을 조정한 결과로 정책 의지와는 상관없다(장애인연금 역시 동일하다). 결국, 기초연금 증액을 제외하면 노인 부문 예산 증가액은 약 3000억원에 불과하다.

가장 취약한 노인 일자리 줄어들어

기초연금과 장기요양보험 다음으로 노인 부문에서 규모가 큰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 사업은 공익활동형 일자리 축소에 따른 총량 감소와 실질적인 일자리 지원 예산 축소로 쟁점이 되고 있다. 2023년 예산은 약 1조4000억원으로 전년도 대비 약 0.4% 증가하는 데 그쳤으며, 노인일자리 사업 예산 구성 등을 감안하면 실제 일자리 예산은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새 정부가 강조한 ‘약자 복지’ 대상 중 가장 취약한 집단인 저소득층 고령 노인이 주로 참여하는 공익활동형 일자리를 약 10%인 6만1000개 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정 당국은 예산안 설명자료에서 사회서비스형을 7만개에서 8만5000개로, 60세 이상부터 참여 가능한 시장형을 16만7000개에서 19만개로 확대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반면, 공익활동형 일자리 감소로 총량이 84만5000개에서 82만2000개로 오히려 감소한 것에 대해서는 “노인일자리의 절대적 규모는 크게 변화가 없고 단순 노무형 일자리는 소폭 줄이고, 민간형 일자리는 더 늘어나는 흐름으로 일부 조정했다”고 설명한다.

국민연금을 거의 받지 못하고 기초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고령의 노인들에게는, 지역사회의 공익을 위한 활동을 통해 받는 소득은 27만원에 불과해도, 대부분 생계를 위해 공익활동형 일자리에 참여한다. 또한 일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다양한 효과가 나타난다. 취업자 수와 고용률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활동과 단순히 비교하여 질 낮은 일자리로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매월 고용동향 등 일자리 통계에서 공익형 또는 시장형 노인일자리를 구분할 방법은 마련하지 않고, 노인일자리를 취업자 수 통계의 착시를 가져온 질 낮은 일자리로 만든 것은 정치권과 언론이었다. 취업자 수나 고용률보다 일을 통해 생계에 도움이 되고 노인들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공익활동형 일자리를 6만개 이상 축소한 것은 가장 취약한 분들의 마지막 기회마저 없애는 것이다. 60세 이상도 참여 가능한 시장형 일자리가 만들어져도 기업이 고령 노인을 선호할 가능성은 낮다. 공익활동형 일자리 참여를 위해 대기 중인 노인들이 지난 5월 말 기준 9만명 가까운 상황을 고려하면 마지막 기회를 잃거나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노인들이 복지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저소득층 예산 ‘심폐소생술’ 필요

2023년 예산안에는 기존 영아수당을 부모급여로 확대 개편하는 데 약 1조3000억원을 증액했다. 비록 자연증가분이지만 원칙에 따른 기준중위소득 인상과 함께 국정과제에 제시된 재산의 소득환산제 관련 기본재산공제 확대, 긴급복지 지원 수준과 장애수당 인상 등 기초생활보장과 취약계층 부문은 약 2조4000억원 증가했다. 그러나 70%를 넘는 지연증가분을 제외하면 ‘약자 복지’에 대한 새 정부의 정책 의지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공공의 역할은 최소로 증가 또는 축소하고 민간과 시장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보인다. 그동안의 정부와 달리 첫 번째 예산안에서 기초연금 인상이나 생계급여 선정기준 조정 등 핵심 국정과제 이행 의지는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

이제 2023년 예산안의 심의·의결을 통한 확정은 국회의 몫이다. 새 정부가 처음으로 편성한 예산안에서 부족한 부분은 국회에서 조정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 체제 출범과 함께 민생을 우선 챙기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소득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예산 증액과 전액 삭감된 사업에 대한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대선 당시 공통 공약이 아닌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일지라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재정 전문가로 새 정부 출범 100여일 만에 세 번째로 지명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정부의 ‘약자 복지’를 위한 국정과제 이행뿐만 아니라 사각지대 해소와 보장수준 제고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과 예산만이라도 확대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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