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의 한뼘 양생]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지난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어머니가 먼저 의지를 보이셨고, 이참에 나도 함께 진행했다. 어머니의 경우, 몇년 전엔 아들, 즉 내 남동생이 펄쩍 뛰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었는데 이번엔 자식 모두 어머니 노화에 대한 경험치가 함께 쌓인 탓인지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불거졌다. 내 아이들이 펄쩍 뛴 것이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내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각자 독립해 살고 있던 남매는 서로에게 “엄마를 좀 말려봐”라면서 당황해했고 급기야 그런 결정을 왜 엄마 혼자 내리냐며 항의했다. 어이가 좀 없었다. 얘네들 MZ세대 맞아? 하지만 어디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그냥 “얘들아, 이거 트렌드야”라고 답해버렸다.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하는지도 좀 헷갈리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법적 용어이고 근거는 2018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이다.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자신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명만을 위한 의료적 행위, 즉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인공호흡기 착용, 항암제 투여, 수혈 등을 받지 않겠다는 의향을, 사전에 문서로 작성해놓는 것이다. 먼저 보건복지부가 정한 기관에 직접 가서 상담받아야 하는데, 나와 어머니가 그렇게 해서 서류를 작성했고, 그것은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어 법적 효력이 유지된다.

이제 연명치료 중단은 합법화되었다. 그러나 실감의 영역에서 무엇이 연명이고 무엇이 연명치료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문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는 며칠 전 오랫동안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 왔다. 잠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의 ‘요양’생활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욕창, 옴 피부병에 이어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염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항생제를 독하게 쓰니 식사도 잘 못하고 의식도 흐릿해졌다. 여든일곱 어머니의 몸무게는 겨우 33㎏. 이렇게 되면 누구라도 이것이 ‘요양’일지 아니면 ‘연명’에 불과할지 헷갈리지 않을까?

최근 후배는 식물인간 상태로 27년째 누워계신 어머니의 치료를 둘러싸고 심한 갈등에 빠졌다. 이미 콧줄 급식도 불가능해져서 위에 구멍을 뚫고 뱃줄로 급식하는 어머니인데, 이번에는 의사가 더 이상 주삿바늘을 찌를 핏줄을 찾기 어렵다고 중심 정맥에 관을 삽입하는 시술을 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 시술 자체는 간단한 것이라 치더라도 이런 식의 연명치료를 계속해야 하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현행법상 ‘임종과정 환자’가 아니면 소위 식물인간 상태라도 콧줄을 떼는 것은 불법이다. 법 제정과정에서 수분과 영양의 강제 공급을 중단하는 일을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서 배제해 버렸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서 콧줄을 낀 노인들이 고요히 줄지어 누워, 살았다고도 죽었다고 볼 수 없는 상태에서 하루하루 연명해가는 모습은 우리 시대 늙음과 죽음의 가장 흔한 풍경이다.

올 6월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되었다. 정확하게는 위의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다. 핵심은 의사가 판정하는 ‘임종과정 환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판단으로 삶을 마감하겠다는 말기 환자의 의지가 있다면, 의사가 극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통해 환자의 자유 죽음을 도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근거는 성인의 76%가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서울대병원 등의 여론조사 결과이다(2022년 5월24일, KBS뉴스).

물론 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에게 죽음은 여전히 터부이고 웰다잉에 대한 고민과 토론은 아직도 너무 빈약하다. 오히려 이것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헬조선’의 상황을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스위스의 세계적인 조력존엄사 단체 디그니타스(Dignitas)의 대표는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려면 모든 국민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공공의료시스템과 통증완화의료 제도도 동시에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유영규 외,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봇물은 이미 터졌다. 91세의 고다르의 조력자살이 보여주는 것처럼 고령화사회는 돌이킬 수 없으며 아프지 않아도 “삶이 고갈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좋은 죽음에 하나의 정답은 없겠지만 각자 자기의 좋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떠들 때가 왔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