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성대가 저물어가는 시대의 외교전략읽음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의 외교만사] 태평성대가 저물어가는 시대의 외교전략

태평성대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관점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을 정도로 성공적인 시대였다. 이념적으로 자유와 민주는 보편적인 가치로 고양되었고, 외교안보적으로는 동맹 체제로,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와 세계화로, 그리고 경제 발전과 분쟁은 세계은행·IMF·WTO 등의 기구들을 통해 관리하였다. 강대국 간의 전쟁 없이 이념적 적수였던 중국과 전략적 협력을 이끌어냈고, 소련과 사회주의권은 붕괴되었다. 전통적으로 강대국들이 자신의 세력권을 주장하면서 상호 치열하게 싸웠던 지정학 국제정치는 부차적인 사안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의 자유주의적인 패권질서하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는 급속히 발전하는 경제의 혜택을 보았고, 한국은 이 가운데에서도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차례로 이룬 가장 성공적인 나라였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미국은 중국에 대해 미국 주도의 시장질서와 국제관계를 통해 민주화하면서 미국에 순응적인 국가로 성장할 것으로 낙관하였다. 수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의 붕괴나 몰락을 끊임없이 예견하기도 했지만, 중국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아직까지도 중국이 어떻게 체제 전환을 하는 가운데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세계는 가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 역동성에 대한 답을 대부분 부정적인 행태에서 찾았고, 사회주의와 권위주의 요소는 비효율성으로만 해석되었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다.

중국은 2013년 시진핑 시기에 들어서면서 독자적인 세계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동서 축으로 바라보는 지도 대신 남북의 축으로 세계지도를 재해석하였다. 이 세계지도에서 중국은 중심이 되고 미국은 변방이 된다.

일대일로는 중국이 추진한 최초의 세계전략이라 할 만하다. 과학적 유물론자인 중국의 지도부는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관계라는 상부구조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보다는 경제관계와 생산력을 주도하는 장기적이고 간접적인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이제는 자유주의 무역체제를 포기한 미국을 대신하여 유엔 중심의 국제질서, 경제적 개방과 지역협력, 국제제도의 활용을 적극 추진 중이다. 미국의 자유와 민주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대신해 ‘인류운명공동체’를 들고나왔다.

오는 10월 시진핑 3기가 출범하면, 중국은 이러한 전략들을 더욱 구체화하고 집요하게 추진할 것이다. 기존의 미국 중심의 대외전략은 수정될 개연성이 크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중국이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는 판단이다.

중국은 자신의 세력권을 강화하면서 주변을 보다 중시하는 외교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아, 동남아, 중동, 더 나아가서는 동유럽, 그리고 동북아에서 한국과 일본을 향해서도 더 적극적인 구애의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최근 브릭스(BRICs) 고위급 회의나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는 미국과 서방의 축에 대응하는 또 다른 국제정치·경제·안보 기제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발발은 권위주의 축으로서 중국의 이미지를 크게 악화시켰지만, 동시에 중앙아 국가들은 두려운 러시아를 대신하여 중국을 적극 수용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발발로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적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헨리 키신저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같은 지정학 전략가들이 극력 피하고자 했던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미국의 여론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보인다. 금년 들어 5차례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중국과의 갈등을 완화하려 했던 바이든 정부의 속내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물 건너갔다. 점차 박빙이 되어가는 중간선거를 위해서라도 바이든은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대만 수호 발언은 우연이 아니다. 바이든의 발언마다 국무부는 미국의 대만정책이 바뀐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발언의 수위를 놓고 볼 때, 미국은 이제 대만 문제를 전략경쟁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소위 말하는 칩4동맹이나 인플레 감축법안(IRA)의 추진은 미국이 동맹국들을 배려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의 국내정치는 향후 더욱 대립적이고 분열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다. 중국에 대한 관여정책을 추진할 공간은 대단히 협소하다. 미국은 향후 반도체나 배터리 분야만이 아니라 전략산업의 전 분야에 걸쳐 미국 중심의 공급망으로 재편하고자 하는 노력을 더욱 강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추후에도 중국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한국의 선택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이 경우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해법은 명확해 보인다. 한·미 동맹의 강화다. 미국이 원하는 것을 일단 들어주고, 미국의 배려를 기대하는 눈치이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은 ‘자유’라는 가치를 강조하고 심지어 국제관계 역시 이를 관철시키는 영역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국제관계이론에서 정치현실주의나 자유주의는 모두 강대국 위주의 이론이다. 스티븐 월트의 위협에 대한 균형을 추구하는 정치현실주의적 이론이나 가치와 제도를 중시하는 자유주의 이론이나 한국이 전적으로 수용하기에는 지나치게 현 국제관계를 단순화하고 있다. 이분법적 국제관계는 실제에 부합하지도 않고, 그 이면에는 강대국들의 냉엄한 국가이익이 숨겨져 있다. 가치 동맹이니, 위협에 대한 균형이니 모두 국익을 증진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세계의 대다수 중간·약소국들은 이런 상황에서 현 국제정치를 백과 흑의 세계가 아닌 보다 복합적으로 이해가 얽힌 회색지대로 볼 개연성이 커보인다. 행동에 따른 ‘위협’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하고, 이 위협을 최대한 감소시키는 전략과 정책을 채택하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문제에 모든 것을 투사하여, 국제정치 분야에서 많은 비용을 초래하고 기회의 창을 잃어버렸다면,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와 가치외교에 집중하여 또 다른 반대의 극단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차기 정부는 정반합의 원칙에 따라 이를 다 융합하고 고려하는 새로운 외교안보 전략의 채택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경우, 그 비용이 지나치다면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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