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기후위기, 이대로는 살 수 없지 않은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지난 9월24일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서울시청부터 남대문까지 3만5000명의 시민이 빼곡히 자리를 채웠다. 여느 집회에는 단일 구호가 쓰인 손팻말이 등장하지만 이곳에는 박스를 잘라 손수 자신의 구호를 쓴 피켓이 많았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3만5000명이 각자의 목소리가 쓰인 피켓을 머리 위로 번쩍 들자 무대의 스피커가 내는 소리보다 더 큰 광장의 소란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 자리에 나는 쪽방과 고시원의 주민들, 기초생활수급자, 거리 홈리스와 함께 참여했다. 우리 역시 각자의 생각을 담은 피켓을 하나씩 만들어 행진에 함께했다. ‘기후위기로 물가가 올라서 수급비로 못 살겠다’ ‘기후위기 시대, 모두의 주거권을 보장하라’ ‘기후위기 때문에 우리들만 숨막힌다’ ‘집값 오른다고 지구 하나 살 수 있냐’와 같은 내용들이었다. 뜨거운 여름을 창문 하나 없는 방에서 보낸 쪽방과 고시원 거주자들인 만큼 ‘집’ 문제가 가장 중요한 화두였지만 물가 인상으로 인한 걱정, 가난한 이들이 기후위기의 피해를 감당하게 될 것에 대한 염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져가는 불평등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담겨 있었다.

미국 시카고의 폭염을 연구한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을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비극이라고 분석했다.

폭염이 참사가 되는 경로는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이로부터 비롯된 고립이라는 인간사회가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같은 빈곤층이라 할지라도 공동체가 있는 이들이 더 많이 생존할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볼 때 원주민 재정착률이 현저히 낮은 한국의 개발정책, 도심 내 퇴거로 인한 도시 빈민의 산개는 불평등의 원인이며 재난의 뿌리다.

매년 10월17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날이다. 빈곤사회연대는 이날을 기념해 2005년부터 빈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빈곤 문제는 시혜나 원조, 몇 가지 정책으로 ‘퇴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이날을 ‘빈곤철폐의날’로 이름 붙이고, 빈곤을 만드는 구조와 불평등에 주목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날의 주인공은 빈곤 문제를 직접 맞닥뜨리고 살아가는 당사자들이다. 올해도 노점상, 철거민, 장애인, 홈리스, 세입자와 기초생활수급자를 비롯한 다양한 도시 빈민이 모여 10월15일 서울 청계천 광교에서 거리 행진을 연다.

대통령과 여당은 ‘목소리 없는 약자’를 대변하겠노라 강변하지만 목소리 없는 사람은 없다. 빈곤철폐의날에 울려퍼지는 가난한 이들의 외침이 고립되지 않을 때, 이들의 싸움이 승리할 때 우리 사회의 불평등도 해소될 수 있다.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이미 닥쳐온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인간의 적응법이다. 기후정의와 빈곤철폐가 시급하다. 이대로는 살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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