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에 진심이어야 할 헌법적 이유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5대 그룹 중 SK에 뒤이어 LG가 ESG 보고서를 발표했다. 친환경(E), 사회적 책임(S), 투명하고 민주적인 지배구조(G)를 지향하는 ESG 경영이 기업의 필수적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애초 기업의 투자유도 전략으로 논의되던 ESG는 새로운 재편 국면을 맞은 세계화 질서 속에서 기후위기, 보편적 인권 의식의 성장, 구조적 불평등의 심화 등 전 지구적 대응이 필요해진 현안들에 대해 기업들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가치가 되고 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1년부터 유럽연합이 자본시장에 관여하는 금융사에 ESG 공시의무를 법제화함으로써 이제 ESG 경영은 기업윤리의 차원을 넘어 법적 의무로 전환되고 있다. 올해 초 이탈리아는 헌법을 개정하여 기업의 환경보전 의무를 명시하였다. 환경보전의 과제를 헌법화한 것은 스페인(1978)을 필두로, 네덜란드(1984), 독일(1994), 프랑스(2005)의 사례에 뒤이은 것으로 ESG가 헌법적 차원에서 추진되는 큰 흐름을 보여준다. 제3세계 아동 및 여성 노동 착취와 같은 기업 인권에 대한 국제인권규범의 발전 또한 기업활동에 또 다른 법적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국제사회에서 ESG의 헌법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것보다 더 빠른 시기에 우리는 ESG 경영을 헌법적 과제로 설정해왔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도적 가치를 담은 헌법이 제대로 규범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제헌헌법 이래 권력구조와 기본적 인권에 관한 장과 별도로 경제에 관한 독립된 장을 두어 온 특색이 있다. 현행 헌법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제119조 제1항에서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것이 경제질서의 기본임을 명시하여 기업에 헌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이례적 접근을 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을 헌법화한 데 대해 경제관계의 일방 당사자에게 과도한 지위를 부여한 것으로 마땅치 않아 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시장경제체제에서 기업이 주요한 경제주체임이 엄연한 현실에서 국가와 사회의 기본법인 헌법에서 기업을 헌법생활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조화를 추구하는 민주공화국의 기본질서에서 국민경제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는 기업에 그에 걸맞은 시민적 지위를 부여한 것으로 새길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기업에 국민경제생활의 주축인 시민, 즉, 공동체 구성원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모두가 공존·공생·공영하는 민주공화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기업의 헌법화는 축적된 자본의 효율성과 재생산에만 골몰하기보다 기업성장의 보이지 않는 토대인 공동체의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해 기업이 공적 책임의 일부를 부담하는 헌법적 이유가 된다.

현행 헌법은 1980년 헌법부터 명문화한 환경보전에 대한 국가와 국민의 공동책임을 제35조에서 계승하고 있다. 개인과 더불어 경제주체의 지위를 헌법에 의하여 승인받은 기업은 환경보전에 대한 국민의 공동책임을 이행해야 할 헌법적 의무를 가진다.

시민적 지위를 가지게 된 기업의 사회적 책무 또한 근로환경과 노사관계에 대한 기본적 인권의 보장 조항을 통해 이미 헌법적 과제가 된 지 오래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조건의 기준을 법률로 설정하도록 한 근로의 권리에 관한 조항이나, 사용자인 기업에 또 다른 경제주체인 근로자와의 단체적 교섭 및 쟁의를 원칙적으로 수용하도록 규율하는 노동3권 보장 조항이 대표적이다. 이로써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국가의 기본적 존립이유에 순응하여 기업은 소속 근로자의 인간으로서 존엄을 존중하는 근무환경을 조성할 공적 책무를 기본과제로 한다.

나아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달성하도록 한 경제헌법의 조항은 사회정의와 공정경제의 가치를 실현할 기업시민의 공적 책임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기업은 소속근로자뿐만 아니라 협력관계를 가진 다른 기업과 그 소속 근로자의 인권과 복지, 그리고 기업활동의 기반이 되는 지역사회와 국민경제 및 국제사회의 균형발전을 위한 책임의식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헌법적 책무를 가진다.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나 노란봉투법에 대하여도 경영권이나 재산권에 함몰된 주장보다는 기업의 헌법적 지위에 걸맞은 책임과 조화를 이루는 조건을 고민하면서 헌법적 자유와 권리를 추구할 수 있는 기업의 예지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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