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나은 농사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9월24일 곳곳에서 오롯이 기후위기 문제 하나로 사람들이 모였다. 각자의 삶의 공간에서 기후의 문제가 훅 치고 들어오는 느낌은 피할 길이 없다. 살림하는 입장에서는 농산물값과 품위 문제로 다가온다. 올해 흔한 여름 반찬이던 오이와 가지를 들었다 놓았다 한 이들이 어디 한둘일까. 친환경농산물 소비의 요체인 생활협동조합에서도 농산물 갖추기가 어려워 툭하면 ‘품절’ 표시가 내도록 뜨곤 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점점 더 험해지는 기후에 친환경 농산물은 때깔은커녕 가격 맞추기가 더 어렵다. 그래도 소수의 농민들이 꾸역꾸역 농약, 제초제 안 쓰면서 풀을 뽑아 농사를 지어왔고, 사 먹는 사람들은 내 건강, 가족 건강 생각하느라 웃돈 주고 사 먹어 왔다. 그런데 그 웃돈이라는 것이 사람 마음 묘하게 만든다. 본전생각을 자꾸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직 ‘친환경농산물’이라는 말도 없고, ‘무공해농산물’이라 부르던 1980년대, 농약중독으로 소비자가 아니라 농민들이 쓰러져갔다. 농약과 비료사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1960년대부터 쌓여온 후과를 농촌의 주민들이 먼저 치렀다. 농약중독은 사람과 가축을 가리지 않았다. 1973년 6월28일자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경북 의성군에서 20마리의 소가 갑자기 죽었고, 그 원인은 농약중독이었다. 이미 80년대 초 한국 농민들의 머리카락에 수은 잔존치가 미국 농민들보다 3배가 높다는 결과에다 농약중독으로 병원에 실려 가는 일도 흔했다. 물론 폭락하는 농산물에 빚 갚을 일 막막해 농약을 마셔버리는 일도 흔했다. 농약의 안전성이나 규준도 제대로 확립되지 않던 때 땅과 물,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하여 사람도 살리고 땅도 살리는 길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의들이 모여 한국의 유기농업과 친환경농업의 물꼬를 텄다.

그런데 그 ‘사람’ 중에서도 먹는 사람 목소리가 점점 더 거세져 왔다. 저렇게 농약을 뿌려댔다면 농산물의 안전 문제에 소비자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험하고 돈도 안 되는 친환경 농업을 지키자는 도농연대의 취지에서 벗어나 오로지 농약성분이 검출되었는지 아닌지의 잣대만 남았다. 1997년 도입된 친환경육성법은 육성에 초점이 아니라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친환경인증제도’를 강화해 농약 성분이 검출을 절대기준으로 삼아왔다. 비싼 기계를 도입하면서 기존에 검출하기 힘든 양의 농약도 잘 발견하고 소비자를 안심시킨다는 명목으로 검출 항목을 더 늘려버렸다. 시중 농산물의 500분의 1의 양만 검출되어도 농약을 뿌린 것으로 간주해 유기농 인증을 가차 없이 취소해 버리기도 했다. 억울하지만 내가 농약을 뿌리지 않았다는 증거를 농민이 일일이 검증하기란 불가능하다. 평생 얼굴 마주한 이웃 농민에게 대체 무슨 농약을 뿌렸느냐고 묻는 일은 앞으로 얼굴 보고 살지 말잔 뜻이다. 생산량도 적고 가치를 인정해주지도 않는데 이참에 친환경농업을 접어버리면서 그렇게 한 명의 유기농사꾼을 놓친다.

2017년 살충제 계란 사태 때, 유기농 방사유정란에 40년 전에 밭주인이 뿌린 DDT성분이 검출돼 축주는 소비자들의 비난과 언론의 치도곤을 당했다. 축주는 닭도 계란도 모두 살처분하는 것으로 저항을 표시했다. 드론 방제나 대형 살포기로 뿌리는 광역 방제가 흔해지면서 농약은 바람 따라 흩날려 ‘친환경인증’ 농토까지 날아온다. 농약은 비산되거나 잔존하여 검출되곤 한다. 정부도 억울한 농가들을 구제하는 방법을 만든다지만 인증제도 강화의 기조는 놓지 못한다. 먹는 자들의 목소리가 더 높아서다. 친환경농업은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농약과 비료를 쓰는 일반농산물은 모두 위험하단 말인가. 친환경농업은 농약으로 사람 쓰러지던 시절에서 건너 나와 땅과 물이 어제보다는 나아지는 농사다.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깨끗해져 다양한 생물의 터전을 마련하고 그 소출을 사람들이 얻어먹는 농사가 친환경농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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