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급식에 대하여

우석훈 경제학자

어렴풋한 1980년대 기억으로 처음 대학에 갔을 때 국밥이 450원 정도였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달 되지 않아서 500원으로 올랐다. 그것도 부담스러웠다. 당시 자판기 커피값이 100원이었는데, 두 끼 먹으면 커피값 한 잔만큼 더 내야 했었다. 우연히 갔던 고려대학교 학교식당의 장국밥은 400원이라서 뭔가 열심히 계산을 했던 기억이 있다.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1990년대에는 파리에서 학생 식당에서 두 끼를 먹었는데, 대략 500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0장씩 학생증을 보여주고 샀었다. 그 비용에는 국가 보조가 있었다. 점심, 저녁 두 끼씩 먹으니까 나중에는 너무 지겨워졌지만, 그 돈으로 다른 데서 먹으려면 빅맥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런던의 대학 식당에도 몇 번 갔었는데, 확실히 양은 프랑스보다 많기는 했지만, 채소도 적고, 맛도 그닥이었다. 영국 학생들은 프랑스 대학 식사가 아주 맛있는 거라고 했지만, 쉽게 수긍이 가지는 않았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대학가의 학교 식당 가격이 높아지면서 다시 대학 식사가 사회적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다. 파리는 요즘 얼마인가 잠시 살펴보니까, 일반 학생은 3.3유로, 장학생 등 지원받는 학생들은 1유로 가격이었다. 지금 환율로는 4650원 정도다. 여기에 정부 보조금이 들어오면 1만원 약간 안 되는 돈이 원가일 것이다. 프랑스는 영·유아 급식부터 대학 급식까지, 급식의 질에 상당히 목숨 걸 정도로 관심을 많이 갖는 나라다. 파멜라 드러커맨의 2013년 책 <프랑스 아이처럼>에 샐러드를 더 선호하는 아이를 위한 유아 급식 교육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감동적이다.

유럽선 정부에서 대학급식 지원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게 급식의 질이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도 어린이집 친환경 급식에서 고등학교 급식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상당히 안정된 급식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농업 정책의 일환으로 지역별 ‘푸드 플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노인정을 비롯해 많은 공공급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유통과 보관 등을 포함한 공공급식은 중요한 농업 정책이다.

우리나라에도 대학 급식에 대한 일종의 시범사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은 정부가 1000원, 대학이 1500원 그리고 학생이 1000원을 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올해 사업 목표 인원이 1만명이다. 정책의 인기는 높은데, 사업 예산이 제한되어 있어서 전체 대학의 10%가 참여할 수 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의 조사로는 대학생들이 가장 지출에 느끼는 부담감은 식비 지출 47%, 학비 27.1% 그리고 주거비 14.2%다. 매일 먹어야 하는 식비가 주는 부담감이 만만치 않다.

2021년 고등학교 무상급식이 전면화되면서 우리나라는 어린이집에서 고등학교까지 기본적인 식사는 어느 정도 정책화되었다. 꼭 의무교육에 대해서만 급식 논의를 한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대학 급식에 대한 논의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일까? 이유는 없다. 대학생들도 성장기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은 물어볼 여지도 없다. 그냥 우리가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닌가?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대학 급식을 정부 지원으로 운영한다. 우리도 못할 이유가 없다. 정부와 학생이 반반 돈을 내고, 대학은 시설과 운영을 담당하는 현물 계상 방식을 활용하면 서로 부담을 덜면서 대학 급식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다. 사회복지 정책이며 동시에 농업 정책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도 우리는 대학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는데,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도 그냥 알아서들 하라고 방치할 것인가? 이제는 대학 급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다. ‘학식’, 학생식당 운영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과일 얘기 조금만 해보자. 프랑스의 대학 식당에서 자몽을 처음 먹어봤다. 조금이지만 그 식판에는 과일도 나왔었다. 농업에서 20대 연구를 하다 보니까 한국의 20대들이 과일을 제대로 먹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대학 다니면 과일 한 쪽 챙겨 먹기가 어렵다. 아무도 안 챙겨준다. 먹어야 하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형편이 안 된다.

21세기다운 시선으로 풀어야

어린이집에서 고등학교까지, 주기적으로 영양사들이 과일을 챙겨주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제 과일과는 너무나 먼 세계로 가게 된다. 과일로 상징되는 균형 잡힌 식단이 예방의학이고, 결국에는 건강보험 비용을 줄여주게 된다. 과일 못 먹는 20대, 개인은 못 풀어도 시스템으로는 풀 수 있는 문제다. 20대의 행복지수와 대학 급식, 21세기다운 시선으로 풀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