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기후 부정의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올봄부터 석탄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을 만났다. 기후위기에 따른 ‘탈석탄’ 정책에 따라 이미 석탄발전소가 단계적으로 폐쇄되고 있는 중이었다. 보령, 울산, 호남발전소 일부가 폐쇄되면서 그곳에서 일하던 2차 하청노동자 58명 모두 해고됐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발전소 하청노동자와 몇몇 연구자들이 모여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위기 실태를 조사하기로 했다. 실태조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을 좀처럼 만날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해고된 노동자 중 일부와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무작정 화를 내고 전화를 끊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어렵사리 K와 연락이 닿았다.

K는 발전소에서 8년간 일했다. 일하는 동안 7번의 업체가 바뀌었다. 1년에 한 번꼴로 재입사를 반복하는 동안 발전소 폐쇄 이야기를 알려준 업체는 없었다. 그러다 발전소 폐쇄 한 달을 앞두고 폐쇄와 해고를 동시에 통보받았다.

여수고용노동청이 발전사와 하청업체, 그리고 하청노동자들을 불러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여수지역 플랜트 쪽에 우리 하청노동자를 받아 줄 곳이 있는지 알아봤는데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어요.” K는 해고된 뒤, 동료와 함께 알음알음으로 지역의 3차 하청업체에 취직했다. 하지만 얼마 전 K의 동료가 일하다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한 뒤에 K도 일을 그만두었다. “임금도 너무 적고, 야간 노동도 너무 많이 해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더는 못 버티겠어요.”

정부는 2021년 7월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대책에 발전소 하청노동자의 고용보장 방안은 없다. 대신 해고를 전제로 한 재취업교육 지원이 전부다. ‘공정한 전환’을 내건 정부대책에서조차 더 큰 피해를 보는 집단은 이미 내정되어 있다. 지난 20년간 발전소 하청노동자는 정부의 민영화와 외주화의 산물이었다. 더 많은 위험, 더 적은 임금, 공기처럼 뼛속 깊이 스며든 차별에 이어 이제 ‘기후 정의’를 실현해야 하니 일자리를 내놓으라고 한다.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희생을 예고하는 정부대책은 그 자체로 ‘기후 부정의’다. 국가정책에 의해 생산되고, 활용되다가 버려지는 삶 그 자체가 ‘기후 부정의’다.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지 않아 충분히 싸울 수 있는 시간을 빼앗는 그 자체가 ‘기후 부정의’다.

K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야 왜 다른 노동자들이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는지 알 수 있었다. K처럼 더 낮은 임금과 더 나쁜 노동조건을 감수하며 일하고 있었을까. 새로운 일터에서 일하는 도중에 전화를 받은 노동자들은 모두 정신없이 바빴다. 발전소 폐쇄와 같은 단어들이 나오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인터뷰’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건성으로 듣다 “안 사. 바빠 죽겠구먼” 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K 역시 발전소가 왜 폐쇄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K는 여전히 발전소에 다시 취직하고 싶어했다. 지역에 신규발전소가 세워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 때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다렸는데 해고가 먼저 되었다고도 말했다. ‘기후 부정의’는 그 부정의함의 당사자들 몰래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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