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지구를 구할 것인가

이영경 기자
집청소 서비스 플랫폼 광고의 한 장면.

집청소 서비스 플랫폼 광고의 한 장면.

오랫동안 청소를 해주신 도우미님이 그만뒀다. 때마침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해 새로운 도우미를 구하지 못했다. 2년 만에 청소도우미를 구하기 위해 매칭 앱을 켜니, 비용이 꽤 올라있었다. 주거공간 청소노동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뜻일 테다.

가사노동자는 오랫동안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도 물론 아니었다. 가사노동자는 언제부터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게 됐을까? 불과 네 달 전부터다. 지난 6월부터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돼 가사노동자도 노동관계법 적용을 받게 됐다. 가사·청소 일은 삶에 있어서 필수적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노동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여성들의 집안일’로 여겨졌으며, 대표적인 저평가·저임금 노동이었다. 가사노동은 2022년에야 노동법 체계 안으로 들어왔다. 마침내.

청소도우미를 구하는 방식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지인들로부터 소개받는 방식으로 알음알음 이어지던 것이, 지금은 청소 노동자와 소비자를 매칭해주는 ‘플랫폼’을 통해 이뤄진다.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지정하면, 청소도우미가 매칭돼 플랫폼에서 명시한 ‘표준화된 청소’를 제공한다. 하지만 청소·가사 노동은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와 거리가 멀다. 집마다 구조와 동선이 다르고, 그에 따라 청소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살림’에 뼈가 굵은 청소도우미의 개성도 강하다. 내가 특별히 집착하는 청소의 영역이 있는데, 나의 요구와 청소도우미의 방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타인에게 나의 기준을 기계적으로 요구하긴 힘들다. 하지만 내가 취약한 부분의 청소와 정리를 탁월하게 해주기도 한다. 결과적으로는 집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아진다. 오랫동안 일한 청소도우미는 각 가정과 신뢰관계를 형성하며 청소·가사에 관한 종합적 돌봄을 제공한다. 하지만 플랫폼 기반의 ‘기그경제(Gig Economy)’에 편입된 청소도우미는 이제 ‘얼굴’을 잃어가고 있다. 버튼 한 번으로 쉽게 사람을 교체하거나 그만두게 할 수 있다.

3.8 세계여성의 날 113주년 맞이 돌봄노동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3.8 세계여성의 날 113주년 맞이 돌봄노동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최근‘책과 삶’ 지면에 소개한 <지구를 구할 여자들>(카트라네 마르살)에는 기그경제에 편입된 돌봄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돌봄노동이 시간 단위로 쪼개듯 분절화된 시스템으로 돌아가면서, 직원은 언제든 교체 가능하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시스템의 치명적 단점을 드러냈다. 집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는 스웨덴 노인은 2주간 평균 16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다. 수많은 낯선 사람이 앱의 지시에 따라 집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로부터 가장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더 위협받았다. 돌봄 노동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몸이 아파도 집에 머무르지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러 나서야겠다. “돌봄 노동자들은 디지털 스케줄의 지시에 따라 방호복 없이 취약 노인의 집에 들어가야 할 때마다 죽음의 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르살은 기술과 젠더의 관계를 다루면서 인공지능(AI) 발달로 일자리 소멸이 예측되는 시대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논한다. 그는 인간이 가진 ‘몸’에 집중한다. 인간은 몸을 지닌 존재이고, 몸이 지닌 취약성 때문에 서로 연결되며 돌봄을 필요로 한다. 돌봄은 기계가 대체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돼 왔다. 바둑을 인간보다 잘 두는 AI는 개발하면서, 왜 인간처럼 청소를 하는 로봇은 개발하지 못했을까? “여성과 짙은 색의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고되게 일하는 대가로 극히 적은 돈을 버는 현실과 우리가 이를 태평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저자는 기술은 인간의 선택에 의해 특정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말한다. 방향키를 ‘인간성’의 핵심인 취약성을 인정하며 양질의 돌봄을 전 사회적으로 발전시키는 쪽으로 틀어야 한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기 전, 자본을 위한 기술 발전이 초래한 기후위기로 인류가 망하기 전에.

이영경 문화부 차장

이영경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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