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중국의 위기, 세계경제의 위기

이일영 한신대 교수

미국의 금리 인상과 통화 긴축의 파장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급기야 아시아 지역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25일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 가치의 하락 현상을 우려하면서 한국의 원화, 필리핀 페소화, 태국의 바트화 등이 위기에 가장 취약할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구조는 필리핀이나 태국과는 다르다. 외환보유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상수지도 아직 뚜렷하게 적자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무역수지가 4월 이후 계속 적자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불안한 대목이긴 하다. 그렇지만 위기가 1997년처럼 동남아에서 시작하여 한국으로 번질 가능성은 아직은 크지 않은 것 같다. 심각한 것은, 주요 제조업 국가들의 위기가 세계경제 위기로 번지는 상황이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이일영 한신대 교수

유럽은 이미 위기 속에 들어가 있다. 위기가 가속화 내지 전면화될 것인지 여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귀추에 달려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에는 러시아는 물론 미국의 입장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직접 침공한 것은 올해 2월이지만, 전쟁 구도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부터 형성되었다(이혜정 교수). 바이든 행정부는 이전의 트럼프 행정부의 친러 노선을 배격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범위를 과거의 사회주의권이던 중·동부 유럽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우크라이나가 친미·반러 노선을 강화하자 러시아는 지난해 봄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해 강압외교로 맞섰다가 군사적 침공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바이든 행정부는 나토를 강화하고 유럽과 아시아 지역 동맹들을 결속하며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시도했다. 미국이 주도한 경제 제재에 동참한 국가들은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을 중심으로 40여개국이다. 경제 제재의 최종적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분명히 보이는 것은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인 에너지, 식량, 비료, 광물 등을 수입하는 나라들의 고통이다.

유럽의 산업 경쟁력은 약화될 것이다. 서방 선진국들 중에서는 특히 독일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1990년대 이래의 글로벌화 국면에서 과거 사회주의권과 가장 활발하게 네트워크를 발전시켰다. 그런데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유럽의 기관차 역할을 하던 독일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서 대러 제재로 인한 고통이 크다. 2020년 기준으로 석유·석탄·가스 등 화석에너지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정도는 독일 28.3%, 이탈리아 25.1%이다. 프랑스는 9.7%, 영국은 8.7%, 미국은 1.4%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쟁으로 독일~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 사업에 대한 추가 투자가 중단되었다. 기존 가스관에서도 누군가의 공격으로 추정되는 폭발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제 러시아와 중국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차단하려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불확실하다. 미국은 과거 냉전 시기처럼 글로벌 공공재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문제라는 성격이 강하지만, 중국을 네트워크에서 분리하는 것은 세계적 범위의 문제다. 미·중 갈등은 자유·정의의 이념보다는 미국의 자국 이익 수호 차원에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 자국 내의 구조적 위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0년대 이후 미·중 갈등이 진행된 것은 중국의 경제발전이 기존의 글로벌 분업구조와 충돌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대외적·대내적 갈등 요인이 커졌다. 중국의 지정학적 고립은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1990년대 이래의 글로벌화 조건은 인근의 대만, 한국, 일본 등 제조업 모델국가들과 연계될 수 있게 했다. 홍콩이라는 개방 창구를 지닌 것도 중국의 행운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제조업 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기회가 되었던 환경 조건이 사라지면서, 제조업 고도화가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당장 중국 정부가 총력을 기울인 반도체 산업의 향방이 불투명하다. 중국의 8월 반도체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24.7% 감소했다. 이는 1997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크게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건설·부동산 부문의 후퇴는 재정적 대응 능력을 제약하고 있다.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한 지방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다.

미국의 적극적인 보호주의 정책은 제조업 국가들에 충격을 주고 있다. 독일과 중국이 경제적 위기에 빠지면, 세계경제는 크게 흔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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