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논문’, 논란 종식을 바란다

정희진 여성학자
[정희진의 낯선 사이] ‘김건희 논문’, 논란 종식을 바란다

표절은 맥락이 필요한 문제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먼저 발표했다면, 타인의 아이디어를 훔친 것일까? 어떤 지식도 사회의 자장 안에서 자유롭지 않다. 페미니즘도 마르크스주의도 시작은 자유주의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 언어로 연결된 문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정희진 여성학자

정희진 여성학자

2015년, 신경숙의 표절 논란 즈음 나는 관련 글을 썼다가 장정일로부터 비판받은 바 있다(한겨레, 2015년 9월3일자 인터넷판). 그는 “당신(나)이 쓴 글 중에서 순수한 당신만의 생각이 얼마나 되는가”를 질문하면서, “영향과 모방은 물론 패스티시·인용·비유·패러디가 혼재된 문학 자체에 대한 논의 없는 표절 논쟁”은 문제라는 것이다.

전후 사정을 살펴볼 때 ‘진짜 표절’도 없지는 않지만,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표절 논란은 문맥이 생략된 채, 소동으로 끝나는 퇴행의 반복이 되기 쉽다. 이래저래 쉽지 않는 문제다.

글쓰기가 생계이다보니 많은 고민과 사례 속에서 산다. 지식의 제국주의.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글을 썼는데, 알고 보니 영어로 된 책에 이미 나와 있는 내용이다. 한국사회는 영어책을 ‘원서(原書)’라고 부른다. 한국어로 된 책은 원서가 아닌가? 상황이 이러니, 우리는 자기 생각을 하기 전에 영어권 글을 먼저 읽는다. 이것이 비서구 연구자의 이중 노동, 식민 구조다.

나는 아내에 대한 폭력을 소재로 석사 논문을 썼다. 7년간 피해 여성 상담과 함께 많은 참고문헌을 읽었다. 그러다가 영어책을 보니, 내가 한 공부가 1970년대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즘 논의에 다 있었다. 분노, 허탈, 무기력….

나의 질적 방법(인터뷰)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 폭력의 특성상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어가 지식을 대신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의 최전선에 대한민국이 있다. 만일 내 논문이 영어 번역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한국사회의 남성성을 식민지 남성성이라고 개념화한 적이 있다. 탈식민주의 이론가 타니 바로의 식민지 근대(colonial modernity)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의미는 다르다. 식민지 근대는 제국 내부에도 식민지가 있고, 제국주의는 필연적으로 식민주의를 동반한다는 논의다. 하지만 식민지 남성성은 (식민지에 사는 남성의 남성성이 아니라) 남성이 외세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약자(여성화, 피해자화)로 규정, 국내나 가정에서의 성차별에 대해서 무관심, 무지하다는 의미다. 나의 식민지 남성성 공부에서 타니 바로의 개념은 유용했다. 하지만 이를 표절이라고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급변하는 표절 개념

대학의 실적주의가 강화되고 교원들에게 논문 제출 압박이 심해지면서 ‘학교 밖 독자’를 상정한 인문학 저널 필자군이 급감했다. 한편 각종 커뮤니티 저널이 논문 등재지로 인정되면서, 논문 투고자와 심사위원의 경계도 흐려졌고 연구자가 많지 않은 조건에서 ‘정치적 성향이 맞는, 아는 사람들’의 글이 많이 실리는 상황도 자연스러워졌다. 나도 그런 저널에 심사위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대필도 많이 했다. 대가가 없었을 뿐이다. 20여년, 바쁘고 유명한 사회운동가 ‘어른’을 대신해 분업 차원에서 썼다. 나의 대필은 사회운동의 일환이었다.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남의 글 몇 쪽을 출처 없이 썼다? 국내 연구자의 글이나 본인의 석사 논문을 번역해서 외국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남의 글의 프레임이나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와 단어만 바꾸었다? 이제 표절은 이런 게 아니다. 이 정도가 표절이라면 너무 가혹하다. 당대 “표절”은 노동 강도(?)에 따라 짜깁기, 다운로드, 대필, 파일 전체 가로 채기이다. 이 정도가 되어도, 표절을 문제 제기하는 이들이 매장되는 구조다.

국가별, 대학별, 개인별 양상은 다르지만 대학도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부정의가 존재한다.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번역을 시키고 임금도 지급하지 않고 이름도 올리지 않은 채 최종 점검도 하지 않은 가독성 제로 번역서, 평생 발표한 논문이 다섯 개인데 모두 남편이 편집위원장으로 있는 학회지에 실린 경우, 자신이 훔친 논문의 저자에게 표절을 뒤집어씌우고 해고하는 이들, 특정 대학과 지자체의 결탁…. 논문의 질의 다양성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에 읽은 논문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 2020년 10월22일, 잠자리에서 ○○○ 할머니는 당신의 침대 위로 나를 올라오라 하시고 꼭 끌어안고 손은 잡으며, ‘이런 인연이 아니라 다른 인연으로 만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신다. 하얗고 부드러운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순간과 절규, 행복했던 순간과 웃음의 전율이….” 이는 논문 형식에도 맞지 않고, 사실을 오도하기 쉽다. “이렇게 만나지 않았더라면”이라고 글쓴이가 직접 썼듯이, 관련학계에서 ○○○ 할머니와 기고자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국의 대학원은 일반대학원,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으로 나뉜다. 대개 일반대학원은 전업 학생이 주간에 2년 혹은 3년 수업(코스 워크)을 이수하고 외국어 시험, 논문 자격 시험, 논문 프로포절 심사, 중간 발표, 1회 이상 국내 학술지 게재, 1~3회의 심사를 거쳐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전문대학원은 의학, 법학, MBA 과정이다. 특수대학원은 교육대학원, 정책대학원, 사회복지대학원 등 원래 목적 자체가 관련 종사자의 재교육이다. 직장인이 많으므로 야간 수업이 많다. 최근에는 김건희씨가 관련된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같은 특수대학원이 증가했다. 석사 논문을 쓰지 않고 학위 취득이 가능하기 때문에 박사 학위 진학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학생 신분을 유지하지 않음

2021년 교육부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원 총수는 1174개다. 대학마다 여러 개의 대학원을 운영하므로 대학 수보다 훨씬 많다. 이 중 특수대학원이 805개로 가장 큰 비중 (68.6%)을 차지한다.

나는 더 이상 김건희씨의 논문이 문제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상황은 정쟁일 뿐이다. 그의 문제는 대학 개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의 학사-석사-박사 과정은 논문이든 출석이든 정상적인 상황이 하나도 없다. 그의 논문은 표절이 아니다. 그냥 학교를 다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된 “Yuji”는 학위 논문이 아니고 김명신·전승규의 공동명의로 2007년에 <한국디자인포럼>에 실린 글이다. 제목 ‘온라인 운세 콘텐츠의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의 영문 초록에 그 유명한 “Yuji” 가 나온다. 일단 한국어 제목 자체가 비문(非文)이다. 전문번역가 배동근에 따르면, “온라인 운세 서비스의 콘텐츠의 품질과 회원 증가 사이의 상관성 연구(Research on the Association between the Excellence of Contents of Online Fortune-telling Services and the Growth of Their Membership)” 정도가 가장 근접한 제목이라고 한다.

어쨌든 “Yuji”의 책임은 국민대가 아니라 <한국디자인포럼>에 있다. 학교를 다녔다면 지도교수, 동료, 도서관 직원의 체크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가 정작 ‘유지’하지 못한 것은 그 자신의 대학원생 멤버십이다.

2008년 김건희씨가 취득했다는 박사 논문,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 ‘애니타’ 개발과 시장 적용을 중심으로>를 보면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나온다. 오승환(심사위원장), 전승규, 반영환, 송성재, 오명훈의 서명은 손 글씨인데 서체가 동일하다. 한 사람이 썼다는 얘기다.

이런 간단한 문제를 두고 지식인 단체가 찬반에 휩싸이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상황은 희극도 아니고 난센스다. 여야 간 정치 쟁점화를 멈추고, 논문 비리와 관련한 대학의 전수 조사가 필요할 뿐이다.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통치의 전제는 우중화다. 자본과 교육부는 공동체의 지식 생산에 고민이 없다. 계급 양극화처럼 지적 양극화가 필요할 뿐이다.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똑똑한’ 이들 몇몇이면 사회는 굴러간다. ‘김건희 박사’의 대량 생산은 부자와 대학에만 좋은 일이다. 대학 사회의 최소한의 상식, 이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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