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략과 국민 참여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권헌영의 사람과 디지털] 디지털 전략과 국민 참여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고 미국과 소련이 자유와 공산의 양 진영으로 체제경쟁을 가속화하던 냉전 시대, 1957년 10월4일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로 쏘아 올렸다. 이때 미국이 느꼈던 충격을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부른다. 연합군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과학기술과 첨단 무기 분야도 미국이 선도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소련의 우주기술이 우주에 생명체를 보낼 정도로 발전하자 소련이 추진체의 방향을 바꿔 미국 본토에 핵탄두를 실어 나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케네디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국민들에게 ‘미국은 달에 사람을 보내고 다시 안전하게 지구로 귀환시킬 담대한 국가전략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다.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의 구상과 선언 이후 10년이 안 되어 달에 사람을 보냈고 약속대로 안전하게 귀환시켰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중심으로 하는 과감한 우주개발투자는 ‘돈 먹는 하마’라는 평가도 받지만 여전히 세계과학기술 패권국가의 지위와 더불어 첨단무기체계와 국방과학기술의 전초기지로서 세계 유일의 안보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우주기술의 후방효과로 과학기술 기반의 산업 패권국가 자리도 여전히 미국의 몫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디지털플랫폼정부 위원회 출범식에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달 탐사 프로젝트를 소환했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인프라 강국인 것을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마당에 인공지능과 데이터로 무장한 새로운 시대의 정부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디지털 전환으로 세계를 선도하고 글로벌 중추국가의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지도자의 의지를 담고 있었다. 윤 대통령의 의지는 세계 최강의 인공지능과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정부 부문부터 디지털 기술을 혁신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민간의 역량을 중심으로 정부 혁신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으로 구체화됐다. 케네디 대통령이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달 탐사 도전을 담대하게 선언한 것처럼 우리도 인공지능과 데이터를 중심으로 세계 중추국가가 되고 디지털 전환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첫 국가가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분명한 사실은 디지털 혁신의 충격파가 발 빠르게 전개되는 한국의 지도자가 담대한 도전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절박함을 호소하면서 디지털플랫폼정부 정책을 국가 전략산업정책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는 점이다. 디지털 비전문가인 윤 대통령 앞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수 가르치려 했던 민간 전문가들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윤 대통령의 디지털 구상은 시리즈로 이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고 구체화된다. 그 담대한 구상은 작년 12월 발표된 윤석열 정부의 공약 발표에서 출발한다. ‘정부 조직의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화’를 기치로 내걸고 정부와 민간이 데이터를 함께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의 일원으로 기능하자는 전략이 디지털 구상의 핵심 맥락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혁신의 방향성은 올해 9월 디지털플랫폼정부 위원회 출범식에서 발표됐다. 정부의 플랫폼 구현(Platform in Government)을 넘어 플랫폼으로서의 정부(Government as a Platform)라는 변혁을 이 구상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디지털 데이터의 저장, 분석, 이동이라는 커다란 산업생태계 조성으로 플랫폼을 기획’한다는 목표는 기존의 전자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지향점을 드러낸다. 이는 정부가 앞으로의 방향성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공적 서비스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행정효율화와 디지털 민주주의까지를 그 달성 목표로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뉴욕 순방에서의 디지털플랫폼정부 구현 의지와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전체적 로드맵으로서 제8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표된 국가디지털전략은 이것이 선언적인 미사여구에만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일련의 디지털 정책은 내년 상반기에 국민 앞에 종합청사진으로 제시될 예정이다. 이제 막 출범하고 진용을 갖춘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에서 민간 전문가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 이 일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전략과 관련하여 역대 정부 중 가장 실질적인 힘과 역량을 갖춘 조직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였다. 대통령의 동지적 연대와 지지를 얻고 있는 김병준 위원장이 이끌고 있었던 덕분인데 지금도 고진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연대와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디지털 국가전략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로 첫 수를 둔 이 디지털 전략의 출발 과제는 국민의 참여로 그려낼 수 있는 진짜 혁신과 국민의 지지로부터 추진력을 확보하는 데 있다. 앞으로의 디지털 전략이 성공하려면 국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일상이 변화하고 스스로가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혁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디지털 경제와 산업전략은 장기적이고 오래가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어야 하지만 큰 틀에서의 디지털 전략은 국민의 체감에서 나오는 지속적인 지지에 힘입어야만 강력하게 추진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디지털 전략이 표면적인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나아가 국가전략은 역동하는 세계의 질서를 우리의 질서로 그려내고 미래 세대를 위한 길을 뚫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을 담아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기존과 다른 디지털 전략을 구현해야 한다. 또 한 축은 주권자인 국민의 삶을 바꾼다는 점에서 국민의 직접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국민의 참여로 정책을 설계하고 변화를 실현해 온 경험이 있다. 디지털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신뢰성 있는 공공데이터 개방을 제안했다. 시민들이 먼저 확진자 동선앱을 만들고 공적 마스크앱을 만들어 공개했다. 청년 일자리 정책에 청년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청년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고 공론장을 운영하면서 실제 삶에 필요한 정보와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제주도는 제주중앙초등학교 학생들의 의견을 수용해 아이스팩 수거함을 운영하고 있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과 국민이 참여하는 정책은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디지털 전략과 정책의 설계과정에도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고 국민에게 과감히 평가받을 수 있다는 각오도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해야 할 때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혁신 거버넌스를 세워보자.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디지털 전략을 실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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