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나이 낮추자는 선동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촉법소년 나이를 낮추자는 이야기가 많다. 여당 의원부터 재촉한다. 김병욱 의원은 2017년 7897건인 촉법소년 범죄 건수가 2021년 1만2502건으로 “4년 새 2배가 늘었다”며 위험을 강조한다. 늘어난 것은 58%인데, 2배 늘었다고 과장한다. 이런 과장도 이상하지만, 문제는 건수가 유독 적은 해와 그렇지 않은 해를 꼽아 보여주면서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거다. 같은 통계를 보면 2012년 촉법소년 범죄 접수 건수는 1만3339건이었다. 2021년에 1만2502건이었으니, 기준을 지난 10년으로 잡으면, 범죄는 완만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도 특정 연도를 꼽아 인용하며 범죄가 급증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촉법소년에 대해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곳은 언론이다. 자극적인 기사가 넘쳐난다. 지난 8월 고등학생들이 할머니를 폭행하며 담배 사달라고 강요한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촉법소년 제도 자체를 없애거나 나이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고등학생은 이미 촉법소년 나이가 아니다. 술을 팔지 않는다고 편의점에서 행패를 부린 청소년도 그랬다. 스스로 촉법소년이라 처벌받지 않는다고 했다지만, 이미 촉법소년 나이를 넘어섰다. 소년은 구속되었다. 기본적인 확인조차 없는 언론보도가 여론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촉법소년 나이 낮추기의 불쏘시개가 되었던 사례는 이밖에도 많다.

그렇다면 “촉법소년 연령이 70여년간 그대로 유지돼” 있으니, 하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법무부 장관의 주장은 어떨까. 형법이 만들어진 1953년과 2022년의 소년은 확실히 다를 테니 말이다. 그러나 70년 전보다 오늘의 소년이 더 성숙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사회적 이유기가 더 길어진 것 같기도 하고, 예전보다 요즘 청소년들이 덜 의젓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판단은 대개 인상비평에 불과할 거다. 그래서 촉법소년의 기준이 14세여야 하는지, 15세 또는 13세여야 하는지는 얼마든지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촉법소년 나이 논란의 핵심,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아서 문제라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는 건 결코 아니다. 촉법소년도 범죄에 따라 다양한 보호처분을 받는다. 모두 10개의 보호처분 중에서 가장 무거운 10호 처분은 2년 동안 소년원에 가두는 조치다. 소년원은 교도소 못지않게, 아니 실제로는 더 힘든 구금시설이다. 간판은 모두 ‘○○학교’라고 붙여놓았지만, 간판을 빼면 학교로서의 면모는 거의 없다. 바리스타를 배운다고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중·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기 위한 공부는 거의 하지 않는다. 아예 과정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고 태반은 정규학교도 아니다.

한 끼에 2185원짜리 식사도 문제다. 이 돈으로는 도저히 단가를 맞출 수 없다. 밥만 잔뜩 먹이는 식단이 반복된다. 매점조차 없고, 간식도 전혀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주린 배를 채울 건 밥밖에 없다. 소년원생은 대개 탄수화물 과다섭취로 인한 초고도 비만에 시달리고 있다. 급식만으로 버티는 소년원보다는 영치금으로 과일, 달걀이나 밑반찬도 함께 사 먹을 수 있는 교도소가 훨씬 낫다. 소년원생의 옷은 딱 두 종류, 겨울옷과 여름옷밖에 없다. 10월은 겨울옷의 계절이다. 낮 기온이 25도씩 올라가도 소용없다. 규정이 그렇다. 이런 곳에 2년씩 가두는데도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은 오해일 뿐이다.

소년원 2년 구금 등 다양한 보호조치가 작동 중이니 촉법소년이라고 무조건 용서하는 건 아니다. 나름의 안전장치는 갖추고 있다. 다만 어른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대하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소년보호를 보다 체계적으로, 합리적으로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은 따끔하게 야단쳐야 하고,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가르치고, 먹이고, 입히는 것부터 제대로 하는 게 그 첫걸음이어야 한다. 형사재판이든, 소년부 재판이든 피의자 부모의 재산이나 소득과 상관없이, 변호사 선임 여부와 상관없이 공평하게 진행된다고 믿을 수 있는지도 중요한 관건이다. 한국에서는 이 모두가 엉망이다.

소년범죄는 어른들의 범죄보다 훨씬 더 신중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잘하면 범죄와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세상에 앙심을 품은 범죄꾼을 양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촉법소년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소년보호 정상화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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