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의 한뼘 양생

간호사, 간병인, 요양보호사, 그리고 나, 보호자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의 한뼘 양생] 간호사, 간병인, 요양보호사, 그리고 나, 보호자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간호법 제정을 둘러싸고 찬반이 분분하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기 위해 간호법이 필요하다며 300일 넘게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등은 간호법이 간호사들만의 이익 추구를 위해 타 업무영역을 침해한다며 ‘간호법 제정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에 나서고 있다. 나는 뭔가 기시감이 든다. 2000년 의약분업 때, 1993년의 한약 분쟁 때, 그리고 2년 전의 의사 파업 때가 떠오른다. 피로감이 몰려오고 정신건강을 위해 아예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 문제에 깊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늙고 병든 어머니의 직접적인 돌봄 제공자이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어머니는 몇 년 전 심한 요추 압박골절로 4개월 넘게 두 군데의 2차 병원과 한 군데의 요양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으셨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그 간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수면·식사·용변·목욕 시중 등 생존과 관련된 24시간 돌봄, 재활을 위한 병원 내 이동, 환자 상태에 대한 모니터링과 의료진에 보고하기…. 가족에게 요구되는 일은 끝이 없었고 나와 동생들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결국 간병인을 고용했다.

그러면서 생긴 질문. 간병은 꼭 가족이 해야 하나? 그러면 돌봐줄 가족이 없는 사람은? 혹은 간병인을 고용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은? 혹시 병원 내의 환자 돌봄은 간호사가 해야 하는 일 아닐까? 그런데 내가 경험한 간호사의 환자 돌봄 업무는 바이털 체크와 투약 정도였다. 더 많은 시간을 병동 관리 같은 행정업무에 쓰는 것 같았다. 나는 간호사 출신 친구들에게 물었다. “간호의 정의가 뭐야? 간호와 간병은 어떻게 달라?” 그들이 말하기를, 교과서적으로 간호는 간호사정(assessment), 간호계획, 간호수행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다시 말해 간호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질병에 걸린 사람’의 몸과 마음, 환경을 총체적으로 돌보는 일이란다. 그렇다면 병원 안에서 소위 간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은 사실상 간호의 영역 아닐까?

오랜 입원으로 섬망이 심해지자 어머니를 퇴원시켰다. 그리고 노인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신청해 3등급을 받았다. 하루 3시간씩 요양보호사가 집에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와상환자에 가까운 어머니에게 주 5회 하루 3시간의 돌봄 제공은 너무 부족했다. 더 큰 문제는 사회복지체계에서의 요양보호 제공은 어떠한 의료적 처치와도 연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가 여러 날 설사를 하고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을 때 나는 동네의 모든 의원에 전화해서 방문 진료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하여 이번에는 두 번째 질문, “요양보호라는 일상적 돌봄과 간호라는 의료적 돌봄은 왜 분리되어 있을까?”

지난 몇 년간 나는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입·퇴원 서류에 사인하는 것과 같은 법적 대리인 업무부터 어머니 약을 챙기고 골다공증 주사를 놓는 것과 같은 간호사급의 업무, 식사를 살피고 목욕을 시켜드리는 등의 간병인 혹은 요양보호사급의 업무를 넘나들었다. 그리고 제도적 서비스 사이의 틈을 메우기 위한 수십, 수백 가지의 자질구레하고 노동집약적인 돌봄노동을 수행했다. 아서 프랭크는 <아픈 몸을 살다>에서 돌봄 제공자는 환자의 질병을 함께 겪는 벗, 목격자,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돌봄에 대한 그런 이상과 뼈를 갈아 넣는 것과 같은 돌봄 현실 사이의 간극은, 나, ‘보호자’에게는 너무 크다.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중 가장 많다(2021년 현재 33.4%). 수술 후 퇴원해서 집에 가도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다. 또한 아주 빠르게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 중이다. 노화인지 질병인지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 몸으로 꽤 오랜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병원 중심의 의료돌봄 체계로는 감당하기 힘든 세상이 열린 것이다. 따라서 이제 병원에 입원하면 ‘보호자’가 없어도 상관없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전면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그리고 집에 있는 고령자나 환자에게는 방문 진료와 방문 간호, 방문 간병이 연계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제공되어야 한다. 돌봄을 탈가족화하는 사회, 전문적인 돌봄 인력을 양성하고 적절하게 대우하는 사회가 성숙한 시민 사회다. 밥그릇 싸움처럼 비치는 현재의 간호법 논란도 그런 돌봄 시민 사회를 위한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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