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재명의 적대적 공생

구혜영 정치에디터

정치 스스로 사라진 게 아니라 국민들이 정치를 버린 수준까지 이르렀다. 정치가 있다면 단 하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적대적 공생뿐이다. 윤 대통령 리스크가 이 대표를, 이 대표의 리스크가 윤 대통령을 살리는, 역설의 정치다.

구혜영 정치에디터

구혜영 정치에디터

‘윤석열 리스크’의 핵심은 고립이다. 윤 대통령에게 여당은 자기 세력이 아니다. 신화가 있는 정치인도, 가치의 리더도 아니다. 이런 처지라면 핵심세력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상식적이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관료를 조직화했던 역대 대통령의 경로라도 따라야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집권 6개월여 만에 권력기관 1급 관료 상당수를 인사조치했다. 정권 초 권력기관에 파견된 1급 관료들은 각 부처 인재들이다. 이들이 짐을 싸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윤 대통령은 윤핵관 틀에 갇혔고, 이들과 거리를 둔 뒤엔 검찰 울타리로 들어갔다. 심지어 극우 성향의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임명했고, 직접 ‘주사파’라는 말을 꺼내며 극한 고립을 택했다. 낮은 지지율은 고립 리스크의 냉혹한 결과이다.

이재명 리스크의 핵심은 불신이다. 주변 평가는 “자기 생존밖에 모른다”가 지배적이다. 사법 리스크는 불신의 최정점이다. 대표가 되려면 사적 문제는 털었어야 했고, 대표가 된 뒤엔 의혹에 휩싸인 최측근 인사들을 당직에 기용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그러지 않았다. 정책에서도 정통 민주당의 ‘정신’이 느껴지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대의’가 분명하지 않다. 느닷없는 친일론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가 실용과 민생을 강조할수록 정체성 회의론만 확장됐다. 이 대표는 당 최대주주를 20년 만에 교체했지만 민주당을 새로운 세력으로 만들지 못했다. 이 대표의 ‘불신’ 리스크가 해소되지 못한 탓이다.

고립과 불신은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리스크다. 두 사람이 적대적 공생 관계임을 드러낸다. 적을 품어야 나도 살 수 있는 것이 적대적 공생의 본질이다. 약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정치력도 그제서야 생긴다. 두 사람은 국정과 의회의 책임자들이다. 일단 만나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여야 민생기획단 같은 기구를 꾸리겠다는 약속이라도 좋다. 최근 유럽 극우정권과 사민당 세력도 연정을 모색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보수당 당수 처칠과 노동당 당수 애틀리는 전시내각을 꾸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며 처칠과 애틀리의 공조를 거론했다.

두 사람 만남을 촉구하며 글을 마감할 무렵 검찰이 민주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한다는 속보가 떴다. 이 대표 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물증을 잡기 위해서였다. 1979년 YH무역 노동자 진압을 위한 공권력의 신민당사 침탈 이래 야당 당사 압수수색은 처음이다. 압수수색 시도는 대검 국정감사 전날 이뤄졌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압수수색을 시도한 것은 아무리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해도 검찰에 정치를 ‘갖다 바치는’ 일이다. 김 부원장은 임명 일주일밖에 안 돼 사무실 책상도 없었다고 한다. 검찰은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대가성 자금이 지난해 이재명 대선 후보 캠프로 흘러들어갔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1위 후보였고, 펀드 공모 3일 만에 선거자금을 채울 정도로 돈이 부족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여권 내부에서 정치 복원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다. 야당 당사 압수수색 시도는 정반대 기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능 프레임을 부패 프레임으로 덮으려는 것, 검찰 수사로 인위적 정계개편을 꾀하려는 것. 어떤 경우든 사정 정국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검찰 칼날이 날카로울수록 윤 대통령도 곤혹스러워진다. 국정을 잘 운영했다면 사정에 대한 민심 호응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지지율은 20~30%대를 맴돈다. 뭘 할 수 있겠는가. 여권 내 구심력도 탄탄하지 않은 마당에 야당을 적대시하며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드는 일, 쉽지 않다. 지금처럼 전 정권과 제1야당을 동시 겨냥할 경우 야당 전체가 뭉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친문재인·친이재명계가 타협할 가능성도 있다. 검찰의 칼이 정권 중반을 넘어서면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는 사실, 윤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이대로는 공멸이다. 폐허가 된 정치에선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언제까지 비호감 대선 연장전을 치를 텐가. 일단 만나기부터 하시라. 만나야 서로 이해도 하고, 이해가 쌓이면 적대적 공생도 서사가 된다. 그래야 덜 미워하고 덜 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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