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횡재세인가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최근 유럽연합 이사회는 ‘연대기여금’의 이름으로 횡재세를 공식화했다. 연대기여금은 화석연료 부문의 유럽연합 회원국 기업이 올해나 내년에 벌어들이는 초과이윤에 대해 최소 33%의 세율로 부과될 예정이다. 법인세 과세표준이 2018~2021년 4개년 평균에 비해 20% 넘게 늘어난 부분을 초과이윤으로 본다. 세입은 주로 에너지 취약 계층 및 중소기업 지원에 쓴다. 회원국 별도의 횡재세를 도입하면 연대기여금은 적용 안 된다. 횡재세는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헝가리, 그리스, 루마니아, 네덜란드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벨기에도 도입을 확정했다. 오스트리아도 도입으로 가닥이 잡혔다. 독일과 미국은 논의 중이다. 나라마다 제도가 다르다. 우여곡절도 적잖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예컨대 매출부가세와 매입부가세 신고금액 차이에 기초해 횡재세를 부과하는 이탈리아에서는 납세 기업들이 행정소송에 나선 가운데 정부가 미납 과태료를 올리고 횡재세율도 10%에서 25%로 인상했다. 법인세에 더해지던 특별세에 25% 세율을 추가해 횡재세를 부과하는 영국에서는 리즈 트러스가 40여일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폐지 수순을 모면했다. 스페인에서는 천연가스 매출 가격의 기준치 초과 정도를 따져서 세액을 산정하는데 향후 대상 업종을 은행업까지 확대하고 세입은 공공주택 건설과 국영철도 투자 등에 쓸 예정이다. 헝가리는 항공사와 보험사한테도 횡재세를 걷는다. 오스트리아는 노동조합의 제도 설계로 현금영업이익(EBITDA) 증가분을 과세대상이익으로 정의한다.

그래도 문제의식은 다르지 않다. 그것은 팬데믹과 전쟁을 배경으로 경제위기 기간에 정상 범위를 넘는 독점자본의 초과이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물음과 연결된다. 독점자본에 초과이윤을 몰아준 위기가 일반 대중의 희생을 수반하는 과정이었다면 그 초과이윤을 사회적 순편익으로 볼 수 있을까. 오히려 위기가 불러온 편익과 비용을 재분배함으로써 경제적 자원배분을 개선할 여지는 없을까. 핵심 질문은, 이 경우 공정한 보상은 어떤 재분배를 통해 달성될 수 있는가이다.

경제학에서 이와 관련된 논란은 역사가 짧지 않다. 제1차 대전 당시 영국에서 정립되어 세계 최초로 횡재세에 근거를 제공한 ‘전시이윤 원리’는 전쟁 이전보다 늘어난 전시이윤은 환수되어 전비 조달에 기여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반면 당시 미국에서는 이윤 말고 투하자본에 대한 공정수익률을 중시하는 ‘초과이윤 원리’가 맞섰고 1917년 10월 통과된 미국 최초의 횡재세 법안은 그 결실이었다. 초과이윤을 계산하는 영국식 ‘평균소득법’과 미국식 ‘투하자본법’은 그렇게 등장했다. 한편 초과이윤과 ‘횡재이윤’이 구분되기도 했다. 전자가 독점자본의 가격설정 결과라면 후자는 외부 요인에 따른 시장 변동 결과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독점자본이 횡재이윤을 몽땅 가져가는 현실에서는 횡재이윤과 초과이윤을 구별하는 실익이 없다.

한국에서도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법인세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횡재세 논의가 시작됐다. 볼멘소리부터 나온다. 혹자는 한국 정유사들은 외국 석유 회사들과는 영위 업종이 다르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국가적 위기를 배경으로 외부 요인에 힘입어 전례 없는 초과이윤을 벌어들였다면 업종과 상관없이 횡재세의 환수 대상이 맞다. 한국 정유사들은 국제가격을 수용할 수밖에 없어 독과점기업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에는 독과점기업 자체가 있기 어려울 텐데 과연 그런가. 독과점이 아니어서 시장지배력이 없다면 횡재세를 부과해도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 없다. 그런데 왜 한편으로는 정유사들이 독과점이 아니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격 전가 때문에 소비자들만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하는가. 궤변이다. 횡재세가 기업투자를 줄인다는 분도 있지만 일회적인 한시 대책을 두고 그런 우려는 과장되었다. 1980년 미국 카터 정부의 실패한 횡재세도 언급되지만 그것은 원유 공급과잉을 내다보지 못한 잘못일 뿐이다. 2020년 상반기의 손실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이었고 이월공제로 감세 혜택이 주어지므로 따로 고려될 사유는 아니다.

경제위기가 일상이 되면서 심화되는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깊다. 그러니 이제는 정말로 절박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약자들을 낭떠러지로 밀어내는 양극화가 눈앞에서 버젓이 진행되는데도 그것을 막아낼 수 없다면 우리 사회는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버리는 셈이다. 횡재세도 못하면 다른 의제인들 쉬울까. 입법이 속도를 더해 연내 꼭 통과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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