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주거권 보장받는 그날까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지난여름 수해 참사가 일어난 신림동, 노부부는 젖은 세간살이를 겨우 말린 그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서울시와 정부는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노부부에게 가장 유효한 대책인 공공임대주택은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이들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최소한 다시 여름이 오기 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갈급한 마음과 달리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이라는 난센스를 내밀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예산 삭감을 막기 위해 국회 앞에 차린 농성장 ‘내놔라 공공임대’가 최근 첫 관문을 넘었다. 지난 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예결소위가 삭감된 공공임대 관련 예산을 예년 수준으로 복구하기로 했다. 예결특위와 본회의가 남아 있고, 증액은 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해 아직 앞날은 불투명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예결소위 의결을 거부하고 회의장을 나갔다고 하니 남은 과정도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공공임대주택 예산의 시급함과 중요성을 감안하면 예산 복구를 위한 여야 간의 협의와 결단이 꼭 필요하다.

답답한 국회 안 상황과 달리 담장 밖 농성장에는 묘한 희망과 기운이 비죽비죽 자란다. 주거권 운동 단체들이 힘을 합쳐 공공임대주택 예산 확보를 위해 국회 앞 농성을 감행하기도 처음이거니와 이에 공감하는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을에 공공임대주택을 짓기 위해 애쓰는 양동과 동자동 쪽방 주민들과 고시원과 거리의 홈리스, 버거운 월세를 감당하거나 깡통 전세가 두려운 청년 세입자들이 농성장에 모인다.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던 사람들이 한데 모이니 각각의 상황이 무주택 시민이 겪는 하나의 큰 어려움 아래 놓인 변주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집 살 돈이 없는데 청년을 위한다며 분양주택 정책만 내세우는 정부에 분노하는 젊은 세입자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이미 늙은 우리가 공공임대주택에 편히 눕는 것일까 한숨 쉬는 쪽방 주민도 집을 사지 않아도 주거권을 보장받는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외치고 있다.

바쁜 날들을 보내는 와중에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기획재정부가 용산정비창을 6조3000억원에 민간에 팔겠다고 밝혔다. 인근 땅은 평당 1억원을 호가하는데 반해 4000만∼5000만원에 불과한 수준으로 자체 평가한 값이라 부동산 호사가들에게조차 ‘너무 싸게 판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재정건전성을 부르짖으며 헐값에 나라 땅을 판다는 계획도 어처구니없지만 이제는 민간에 매각하는 방식 자체를 되짚어야 할 때다. 공공의 토지를 팔아 기업과 수분양자 개인에게 높은 시세차익을 안기는 지금까지의 국유지 활용 방식이 주거 불평등, 자산 불평등을 확대해 왔기 때문이다.

공공의 땅도, 나라의 예산도 빈곤과 불평등 해소라는 공공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 용산정비창은 팔지 말고, 공공임대주택은 늘리자. 보편적 주거권 보장의 소망을 정부와 국회는 외면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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