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에서 되풀이되는 한국증후군

조광희 변호사

원인과 책임을 밝히기는커녕
오리무중 만드는 한국증후군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잃은 후에야
이 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을까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삼각지 근처로 이사한 지 4년이 되었다. 삼각지가 속한 용산구는 서울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어쩐지 어설픈 느낌이었는데, 몇년 전부터 새로운 도심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실마저 이곳으로 이전했다. 위압적이고 비밀스러운 느낌의 청와대를 떠나려는 의지는 수긍할 수 있다. 의지를 보인 여러 대통령들이 못한 것을 윤석열 대통령이 과단성 있게 실행한 점도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하루라도 청와대에 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은 태도로 부랴부랴 이전한 것은 이상했다. 도무지 다른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고 그저 결단이라기에는 기이했기에 주술적인 사연이 있으리라는 온갖 추측이 떠돈다. 세월이 흐르면 억측이었는지 실체가 있었는지는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다.

조광희 변호사

조광희 변호사

그 와중에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구의 첨단을 걷고 질서를 잘 지키는 것으로 이름난 나라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행정력과 경찰력이 무색하다. 서울에 돌연 블랙홀 하나가 떨어진 것 같다. 출퇴근길에 내가 타는 버스는 그 골목 옆을 지나간다. 나는 그 골목 주변에 놓인 추모의 꽃다발들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사고 못지않게 큰 재난은 사건을 둘러싼 온갖 주장과 보도와 공세와 해명이 난무한다는 점에 있다.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주장부터 다른 나라 축제에 왜 부화뇌동했냐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온다. 정권이 퇴진해야 한다는 성토부터 참사를 정치화하는 세력이 문제라는 진단까지 온갖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솔직히 말해서 날마다 되풀이되는 레퍼토리라서 낯설지도 않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사건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결코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 물러나고 누군가 유죄 선고를 받겠지만, 그렇다고 사건이 질서정연하게 일단락되지 않을 것이다. 아까운 사람이 뒤집어썼다는 서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처럼 진상을 모른 채 살아가고, 언젠가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할 것이다.

대통령실의 이전과 이 사건 사이에는 거의 틀림없이 자연적 인과관계가 있다. 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근접하여 이 정부에서 가장 큰 재난이 발생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관련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런 추론은 상식적이다. 그러므로 대통령과 그 의사결정에 관여한 사람들은 자숙해야 한다. 정치적·법적 책임이 있든 없든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면 성찰과 참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정치적·행정적·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자연적 인과관계는 어떤 개인이나 조직의 책임으로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통령실의 졸속 이전은 용산이라는 구역의 행정과 경찰의 업무에 분명히 부정적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향이 행정의 잘못된 공백을 야기하고, 참담한 사건으로 이어졌으며, 그것이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세밀한 조사와 엄정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선정적인 추측과 아니면 말고 식의 주장 말고는 정작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것이 위대한 동시에 초라한 이 나라의 실상이다. 책임이 있다고 단정 짓는 사람들과 그저 불운일 뿐이라고 단정 짓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양극화된 정치세력, 사실에 천착하지 못하는 언론, 편으로 갈라져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이 아수라장이 된 채 뒤엉켜 있다.

대한민국은 나라의 기술력과 행정력으로는 분명히 어떤 사건의 원인과 과정과 책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하는데, 어떤 사건이 정쟁화되는 과정에서 그것을 밝히기는커녕 오리무중으로 만들고 마는 심각한 증후군을 앓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 도달한 나라치고는 너무 예외적인 이 현상을 ‘한국증후군’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치명적 증후군의 원인은 무엇일까.

거대 정당의 적대적 공존을 초래하는 선거제도, 정확한 팩트체크와 불편부당함을 외면하는 언론, 전 세계적으로 의견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인터넷 알고리듬이 이 증후군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 증후군을 치료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것을 누가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국민적 저항? 언론의 자성? 지식인의 연구와 고언? 알다시피 모두 불가능하다. 가장 책임이 큰 정치권의 새로운 리더십? 그나마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 증후군을 긴 시간 시름시름 앓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은 후에야 이 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을까.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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