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광기’가 들끓는 대한민국

[강준만의 화이부동] ‘증오의 광기’가 들끓는 대한민국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광기가 최고로 행복한 상태라고 했다지만, 보답받지 못한 사랑의 광기는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앞의 광기와 뒤의 광기는 어떻게 다른 걸까? 고대 로마의 스토아학파 철학자 세네카는 “약간의 광기를 띠지 않은 위대한 천재란 없다”고 했다지만, 이런 종류의 광기는 사실상 세네카의 목숨을 앗아간 폭군 네로의 광기와는 어떻게 다른 걸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이런 의문이 시사하듯이 광기엔 두 얼굴이 있고, 우리 인간은 늘 그 두 얼굴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왔다. 대체적으로 보아 결론은 늘 하나로 모아지곤 했다. 결과가 좋으면 ‘아름다운 광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추악하거나 사악한 광기’였다. 어떤 분야에서건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엔 그들이 성공을 위해 보인 광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물론 예찬의 용도로 말이다. 큰 사회적 지탄을 받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에도 그들의 광기가 거론되곤 하지만, 이건 비난의 용도로 소비된다.

광기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신비한 앎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때론 창조적 정신이 지닌 특별한 자산의 하나로 대접받기도 했다. 영국 작가 찰스 램이 친구인 새무얼 테일러 콜리지에게 했다는 다음 말은 오늘날에도 창조성을 중히 여기는 분야의 사람들 사이에선 수없이 반복되곤 하는 금언이 되었다. “미쳐 보기 전까지는 자네가 위대하고도 거친 상상력 전부를 시험해봤다고 생각하지 말게나.”

이 금언은 한국에선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로 표현되었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미치광이처럼 그 일에 미쳐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불광불급의 장점은 강력한 집중과 추진력이다. 이는 특히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이었다. 에리히 프롬이 지적했듯이, “지도자들의 광기야말로 그들을 성공시킨 요인이다. 그들은 확신을 갖고 보통 사람들이라면 후회할 일에도 아무런 회의를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불광불급은 큰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불광불급 상태에선 절차에 대한 존중과 도덕성이 들어서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치적 선전선동은 적개심 조직화

시대적 상황에 따라 광기를 보여야 할 사람들이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사람들이 광기를 보이는 비극도 나타나곤 한다.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최고의 인물들은 신념을 잃어가고, 최악의 인간들은 광기로 가득하네”라고 노래했는데,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이 어지럽고 어두워지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선거라고 하는 제도는 그런 현상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 코미디언 윌 로저스의 말처럼, “선거에서 최고의 사람이 선출되기를 바라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사람은 출마를 하지 않는다”.

창조적 광기는 주로 개인에게 나타나는 것이며, 집단의 광기는 창조보다는 파괴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 니체는 “광기란 개인에게는 예외가 되지만 집단에는 규칙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사실 집단은 파괴적 광기를 드러내는 데에 여러모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어떤 광기일지라도 모두가 미쳐 돌아가면 이상할 게 전혀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위가 광기인지 아닌지조차 알기 어려워지며, 집단 내에선 광기가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순수하며 사심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미망과 광기>(1841)의 저자인 찰스 매카이는 “세상이 너나 할 것 없이 미쳐 돌아갈 때는 같이 미친 척해야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는 1720년 영국에서 벌어진 집단적 투기 광풍에 대해 당시 어떤 은행가의 말을 빌려 한 말이라지만, ‘투기 광풍’ 못지않게 ‘증오 광풍’이 불어닥칠 때에도 지켜야 할 원칙이 되었다. ‘증오의 광기’가 사회적으로 들끓을 땐 다수를 따라 증오의 언어를 구사하며 미치거나 미친 척하지 않으면 왕따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는 무엇을 가장하든, 언제나 체계적인 증오를 조직화하는 데 달려 있다”(헨리 브룩스 애덤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코 유쾌하지 못한 현실이지만, 그걸 인정하고 들어갈 때에 비로소 증오를 정면 대응할 수 있다. “우리 시대는 정치적 적개심의 지적 조직화의 시대”(줄리앙 벤다)라고 외친 이도 있었지만, 그 어떤 시대이건 그렇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치적 선전선동의 본질이 ‘적개심의 지적 조직화’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유별난 특성이 있다면, 그건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증오의 조직화’가 대중에 의해 광범위하게 소용돌이처럼 일어나고 있으며, 정치권이 그 소용돌이에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엔 정치적 선전선동은 정치조직에 소속되었거나 고용된 이들이 하는 일이었지만, 오늘날엔 ‘유튜브 현상’이 말해주듯이 수많은 정치적 자영업자나 알바족의 주요 생계 수단이 되었다. 이들의 경쟁력은 누가 더 증오와 혐오를 잘 부추겨 사람들을 광기의 수준으로까지 몰아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한 나라의 사람들이 둘로 편을 갈라 집단적으로 증오의 광기 대결을 벌일 때에 그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거나 속할 수 없는 사람들은 증오의 광기를 더 잘 보거나 느낄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싸우는 양쪽 모두 승리에 대한 희망으로 위로받을 수 있겠지만, 그런 승리의 허망함과 부질없음을 꿰뚫어보는 사람은 그 어떤 위로도 받지 못한 채 양쪽 모두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비난받는 고독을 감수해야만 한다.

증오의 힘은 위대하다. 한 집단 내의 갈가리 찢겨진 분열을 치유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혹 그런 경험이 없으신가? 친하지 않은 사람일망정 누군가를 같이 증오할 때 느끼는 묘한 연대감 말이다. 미국 사회운동가 에릭 호퍼는 “우리는 증오를 통해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결합하여 하나의 불길로 끓어오르려는 갈망에 전율하는 익명의 분자가 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통령, 이런 광기에 책임 없을까

“공동의 증오는 아무리 이질적인 구성원들이라도 하나로 결합시킨다. 공동의 증오심을 품게 되면 원수된 자라 해도 어떤 동질감에 감화되며, 그럼으로써 저항할 힘이 빠져나간다. 히틀러가 반유대주의를 이용한 것은 동족 독일인들을 단합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유대인을 증오하는 폴란드와 루마니아, 헝가리의 결연한 저항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프랑스에서도 이를 꾀했다.”

게다가 분노는 고통을 동반하지만 증오는 고통을 동반하지 않으며, 분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그라질 수 있지만 증오는 사그라지지 않는다(아리스토텔레스). 어디 그뿐인가.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끌어들여 강력한 정치적 자원을 형성할 수 있다(에릭 호퍼).

지금 우리는 그런 증오의 대량생산·대량유통 시대에 살고 있다. 싸우는 양쪽 사이에 이해와 소통은커녕 그게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조차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워런 버핏은 “썰물이 빠져나가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는지 드러난다”고 했지만, 정치엔 투자나 투기와는 달리 그런 판별 기회조차 없다. 과거엔 대국적 관점에서 이 국가적 내분, 아니 내전을 중단하자고 외칠 무게 있는 지식인들이 있었지만, 디지털 혁명의 부작용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어느 한 진영에 자신의 안락한 둥지를 틀고 증오의 선전선동 메시지를 생산해내는 지식인들만 있을 뿐이다.

증오의 언어는 장사가 되고 돈이 된다지만, 돈 욕심이 없는 성직자들마저 이런 증오의 언어 생산에 가담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 마지않는다.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 “경찰분들!!! 윤석열과 국짐당이 여러분의 동료를 죽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무기고가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증오가 그 어떤 시대정신이 된 게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나는 대통령 윤석열이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들의 광기를 탓하기 전에 일순간이나마 그들이 그렇게 말해도 괜찮다고 믿게 만든 사회적 차원의 광기에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은 없는지 처절하게 성찰하길 바란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 대통령과 행정안전부 장관부터 즉각 “모든 게 다 내 책임”이라고 외치거나 울부짖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을까? 그렇게 하는 걸 ‘쇼’라고 생각하는 대응방식이야말로 국정운영엔 어울리지 않는 옹졸한 법조인 마인드의 광기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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