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미사일’과 북한의 나르시시즘읽음

김종대 전 국회의원·군사전문가

작년 7월에 11분간의 우주 비행을 마치고 귀환한 블루 오리진의 회장인 제프 베이조스가 폭탄 발언을 했다. 자신이 창립한 “아마존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는 거다. 마치 이재용 회장이 삼성을 포기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어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우주는 나의 꿈이었다”며 인간의 우주 진출을 위한 “블루 오리진 경영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섯 살 때 무슨 일이 있었나?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루이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한 1969년. 어린 시절에 이를 지켜본 아폴로 키즈들은 후에 과수원 벌판에 불과했던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시골 마을을 혁신의 성지인 실리콘 밸리로 변모시켰다. 아폴로 우주선을 운반한 새턴 로켓과 비행제어, 소재, 초기 컴퓨터 기술이 어우러진 우주공학은 실리콘 밸리를 만든 혁신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또 한 명의 아폴로 키즈가 바로 스페이스X를 이끌고 있는 일론 머스크다. 그 둘은 라이벌 관계지만 서로 공유하는 강력한 정체성, 즉 아폴로 우주선으로부터 빚어진 강력한 에토스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김종대 전 국회의원·군사전문가

김종대 전 국회의원·군사전문가

지난 18일에 화성-17형 미사일 발사를 성공시킨 북한은 온통 축제 분위기다. 이 로켓이 지구 상공 6000㎞에 도달하자 북한은 자신들의 국위가 대우주에 도달했다며 스스로 감격에 차 있다. 이날 둘째 딸로 알려진 김주애를 동행하고 나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미사일이 전 인민과 후대에 물려줄 공화국의 보물로 선전에 열을 올렸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27일에도 김주애를 동행한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 성공의 공로자들을 격려하면서 “인민의 무조건적인 지지 성원 속에 떠받들려 태어난 우리의 화성포-17형은 분명코 우리 인민이 자기 힘으로 안아온 거대한 창조물이며 전략적 힘의 위대한 실체이고 명실공히 조선 인민의 화성포”라고 치켜세우며 “우리는 이룩한 성과에 절대로 자만함 없이 두 손에 억세게 틀어쥔 우리의 초강력을 더욱 절대적인 것으로, 더욱 불가역적으로 다져나가며 한계가 없는 국방력 강화의 무한대함을 향해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냉전 시기에 유인 인공위성을 발사한 소련으로부터 충격을 받아 아폴로 우주선을 발사하며 승리와 환희의 감정에 벅차오르던 미국과 유사한 현상이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광경이 바로 화성 키즈 세대의 탄생, 즉 새로운 시대의 출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 둘째 딸 김주애는 매우 적절한 소품이다. 올봄부터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보기관은 북한이 언제 7차 핵실험을 진행할 것인지에 관심을 집중했다. 그러나 이미 6차례의 핵실험으로 핵탄두에 대한 충분한 실험 데이터를 확보한 북한에 핵 실험은 그리 중요치 않다. 2017년까지 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을 골고루 실험했고, 증폭 핵 분열탄, 수소폭탄까지 유형별로 골고루 터뜨린 북한에 7차 핵실험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인도는 단지 4번의 핵실험만으로 핵무장을 이뤘다. 이런 실험보다는 여러 개의 핵탄두를 탑재하여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의 성공이 북한에는 훨씬 더 큰 전략적 가치를 담고 있다.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핵실험보다 최종 병기라고 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탄에 정권의 운명을 건 대도박이 진행되고 있었던 시기에 한·미·일은 엉뚱하게 북한의 7차 핵실험이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은 도발이라고 정해놓고 군사적 압박을 계획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번 화성-17형의 성공은 북한이 가장 뛰어나고 위대한 존재라고 스스로 도취되는 국가 나르시시즘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자신감과 우월함이 더 대담한 전략적 도발을 촉발하면서 한반도를 분쟁의 열점으로 전환하는 정신적 에너지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군사 과학기술 개발체계는 실패를 장려하면서 끊임없이 도전을 촉구하는 혁신형 체계다. 김정은이 집권하고 나서 평양에 과학자 거리를 조성하고 미사일 연구자들을 수시로 격려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선대가 무기개발이 지지부진했던 과학자들을 숙청한 데 반해 김정은은 여러 번 미사일 실패를 겪고도 과학자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반대로 오히려 그들을 등에 업어주는 사진까지 공개했다.

이런 리더십은 경제와 기술이 월등히 앞서 있는 대한민국에 아직 갖춰지지 않은 덕목이다. 걸핏하면 감사와 문책에 시달리느라고 실패하기 쉬운 위험한 연구를 회피하는 우리의 관료적 연구풍토와 대비되지 않는가. 굶으면서도 저런 미사일을 개발한 저들의 독기와 야망은 이제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이제 북한은 예전의 북한이 아니다. 우리의 대북 정책을 원점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 시간이 왔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부활절 앞두고 분주한 남아공 초콜릿 공장 한 컷에 담긴 화산 분출과 오로라 바이든 자금모금행사에 등장한 오바마 미국 묻지마 칼부림 희생자 추모 행사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황사로 뿌옇게 변한 네이멍구 거리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