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거짓 논리 뒤서 부정의 빚어내는
그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법왜곡법이 실효성은 떨어져도
적어도 위하·상징적 기제로서
효과는 있으리란 주장에 끌린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1월15일 중점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발표한 주요 법안 중엔 법왜곡죄 도입법이라는 게 있다. 판사나 검사가 부당한 목적으로 법을 왜곡하여 해석 적용할 때 또는 증거나 사실을 조작할 때 형사처벌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법왜곡법의 입법 논의는 2018년 시작되어 이제 네 번째다. 어느 일간신문의 사설은 이 법안의 “발상 자체가 놀랍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독일, 스페인, 노르웨이 등 여러 유럽 국가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법률이 제정되어 있고 실제 처벌례도 제법 있다. 왜곡이란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함’을 뜻하는데, 독일에서는 아예 대놓고 법률을 무시하여 권한을 유월(逾越)한 판사를 법왜곡죄 혐의로 수사한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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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건이 있은 후 법왜곡 행위를 처벌하는 법안이 거론되자 이에 반대하며 나온 의견의 근거 중 하나는 그런 행위를 직권남용죄나 직무유기죄로도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직권남용죄는 충분한 처벌수단이 되기 어렵다. 어떤 불법부당한 행위를 하더라도 ‘그런 행위를 할 직권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직무유기죄 역시 법원이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어 유효한 처벌수단이 되기에 부족하다. 더욱이 위 두 죄의 적용 대상이 법왜곡죄의 그것과 정확하게 겹치는 것도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방탄입법’이라고 하나, 그것은 법률의 운용에 관한 문제이고 법률 제정 자체에 반대할 논리가 되지는 못한다. 과거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행사가 잘못된 예를 보면 입법의 필요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BBK 사건에서 두 번의 수사 결과가 달랐던 일이나, 검찰이 공안기관의 조작된 증거와 사실을 받아들여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했다가 결국 무죄가 확정된 유우성 사건을 보라. 검찰권 남용 의혹을 조사한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19년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법왜곡죄 도입을 적극 검토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또 2008년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은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법관이 잘못된 판결로 헌법상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고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드렸다.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법원의 ‘권력형 오심’에 대해 공식 사과한 일이 있다.

다만 법왜곡법이 만들어지면 검찰에서 수사를 받거나 법원에서 형사처벌을 받거나 소송에서 패소한 사건 당사자들이 결과에 불만을 품고 이 법을 악용하는 부작용이 있으리라는 주장은 가볍게 물리치기 어렵다. 실효성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법왜곡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형사소송에서 판사의 심판 범위는 공소사실에 기속되며 증거는 검사가 제출한다. 판사에게 증거제출권이 있을 리 만무한 만큼 판사가 증거를 조작하는 것은 당초에 불가능하다. ‘부당한 목적’이 있었음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재판제도의 구도상 공소사실을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행위를 사실의 조작이라고 가려내기도 어려울 듯하다. 민사소송에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검사가 증거를 감추거나 다른 기관에서 조작된 증거를 받아서 법원에 제출하는 예는 있었으나, 검사 자신이 노골적으로 증거를 조작하는 일은 실제 있더라도 적발해 내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사실을 왜곡하여 공소사실로 구성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이것 역시 부당한 목적으로 그리한 것인지를 판별하기가 쉽지 않을 게다. 또한 어떤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특정의 해석론을 취할 수는 있겠으나, 법 해석론이란 늘 갈라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일면의 타당성이라도 가지는 법 해석이나 그에 따른 법 적용을 두고 법왜곡 행위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문제는 부당한 목적과 고의의 입증 가능성에 귀착한다. 해석에 관한 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범죄 구성요건을 최대한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위헌 주장이 제기되고 무죄 판결이 나기 십상이다.

이래저래 법왜곡법의 실효성은 매우 약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다. 높은 자리에 앉아 이런 논의에 코웃음을 칠 어떤 판사, 검사들의 모습이다. 수사나 기소나 재판이 불가침의 영역이라도 되는 양 행세하면서 거짓 논리 뒤에 숨어, 심지어는 아예 무작스럽고 뻔뻔하게 사악한 부정의를 빚어내는 자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법왜곡법이 실효성은 떨어지더라도 적어도 위하적, 상징적 기제로서의 효과는 있을 것이라거나 권력기관과 권력행위에 대한 시민 통제의 출발점으로 작동될 수 있다는 주장에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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