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말이 되냐고요” 비정상 대한민국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2022년이 보름 남짓 남았다. 각종 결산의 시기, 한 해를 결산하는 기사들도 쏟아져 나온다. 역대급이라는 숫자 뒤, 팍팍한 현실이 그려지는 뉴스들이 적지 않다. 하나하나가 수백만 가구, 수천만 시민의 한숨과 눈물, 불안을 담고 있을 ‘폭탄’들인데, 건조한 몇 줄로 무감각하게 소비된다.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올해는 자산 상위 20% 가구(16억5457만원)와 하위 20% 가구(2584만원) 간 자산 격차가 64배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로 줄어든 가운데, 양극화가 뚜렷했다. 하위 20%의 소득 감소율이 상위 20%보다 3배 이상 커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졌다. 소득 하위 20% 중 적자 가구 비중이 57.7%에 달했고, 이들은 월평균 34만3000원씩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9세 이하 가구주의 평균 부채는 5014만원으로 1년 새 41.2% 폭증했다(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3분기 가계동향조사). ‘부자감세’로 세수는 대폭 줄고, 내년 24조원의 재정지출 삭감안으로 각종 복지가 줄어들면 빈부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불평등은 시민들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심각하다고만 생각할 뿐 불평등이 어디에서 비롯했고, 어떻게 유지되며, 재생산·확대되는지 잘 모른다.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와 지식인선언네트워크는 공동기획으로 우리 사회 ‘불평등’의 실체를 분야별로 깊이 들여다보는 송년 연속강좌를 진행 중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주요국과의 국제 비교 그래프에서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의 좌표였다. 우리만 수치가 뚝 떨어져 있거나, 추세선과 반대쪽을 향하거나, 혹은 추세선에서 완전히 이탈하고 있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체 땅값이 몇 배인지 계산한 ‘GDP 대비 지가배율’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비교 대상이 된 OECD 15개국 대부분이 3 미만이었지만, 한국은 2019년 4.6, 2020년 5.0을 기록했다. GDP 대비 정부지출은 OECD 국가 중 조세회피처로 꼽히는 아일랜드를 포함해 끝에서 3번째다. 정부지출 내용 면에서도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GDP의 10.8%로, OECD 평균(19.8%)의 절반인 압도적 꼴찌인 반면, 기업 지원·SOC 지출 등 경제활동 지원은 14.1%로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러니 조세와 복지 지출의 재분배 효과가 9.6%로 OECD 평균(26.2%)의 3분의 1 남짓에 불과한 게 당연하다. 정부가 불평등 완화에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불평등 문제를 강의했던 전강수 교수(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는 강의 내내 혀를 찼다.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요. 이 격차에 대해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가장 기가 막힌 건 세계 각국에선 어떻게든 불평등을 줄이려 애쓰는데, 우리는 아예 바꿀 수 없다는 체념 속에 불평등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첨병 노릇을 해온 국제통화기금(IMF)마저 불평등의 심화가 경제성장도 멈추게 한다며 경고하는 판국에 말이다.

‘수저계급사회와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강의한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가톨릭대 명예교수)은 지배계급이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3가지 명제를 소개했다. ‘불평등은 없다’고 은폐하거나 ‘불평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평등은 정당하다’고 정당화하거나 ‘불평등이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하더라도, 대안적 평등사회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대안을 부정하는 것이다. 한국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불평등 해소는 늦지도, 불가능하지도 않다. 한국 사회가 비정상 수준의 불평등으로 가파르게 치달은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사실 한국은 1960년 무렵만 해도 토지분배 평등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였다. 제대로 알아야 비판도 하고 대안을 논의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이상하다”는 인식부터 공유하고, 고장을 알리는 경보음에 반응해야 한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던 시절, 힘센 사람들은 늘 선진국이 될 때까지만 참으라고 말했다. 아직 형편이 어렵다며 대신 미래의 넉넉한 분배를 약속했다. 선진국이 된 지도 여러 해가 지난 지금, 힘센 사람들의 말이 바뀌었다. 더 이상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중략) 힘센 사람들의 시혜로는 평등한 세상이 오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이 뜻과 힘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조형근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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