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가방을 멘 여자가 자신이 양부에게 학대와 성폭행을 당했던 공간을 소개한다. 여자의 말투는 무뚝뚝하고 행동엔 거침이 없다. 여자는 학대와 성폭행을 방관했던 양모를 만나 자신의 입양 서류를 요구한다. 여자는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며, 무엇도 두렵지 않은 사람처럼 꼿꼿하게 걷는다. 여자가 마지막으로 간 곳은 자신의 입양승낙서에 법정대리인으로서 서명한 이들의 집 앞이다. “왜 나를 입양 보냈나요? 그것도 소아성애자에게? 우리 부모님은 나를 버린 적이 없는데!” 여자가 한 질문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생존을 위협한 이들 중 누구도 그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삶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수천 수만 번 담금질한 여자는 끝내 평정심을 잃고 자신을 위해 절규한다.
KBS <시사직격> ‘3000달러의 삶 해외입양 잔혹사’는 13세의 나이에 프랑스로 입양된 김유리씨의 뒤를 따라 걸으며 소위 ‘우편배송아기’라 불렸던 한국 대리입양 제도의 피해 사례들과 만난다. 1950년대 전쟁고아 문제를 해결하려시작된 해외입양은 1980년대가 되어 정부가 용인하는 민간외교사업으로 성격이 전환되었다. 유리씨가 프랑스로 간 1984년은 입양 아동의 ‘해외 수출’이 정점을 찍은 해로 당시 아동 한 명의 입양 수수료는 3000달러, 직장인의 연봉과 맞먹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 전까지 시행된 대리입양은 양부모가 적격성 심사를 거치지 않고도 서류만으로 간단히 입양을 가능케 하는 제도로, 아동을 상품으로 취급하던 기관들은 이를 이용해 수출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었다. 절차를 무시하고 토큰처럼 작성된 서류들은 기관의 임시 보호 아동들까지 입양 대상자로 분류해 친부모의 동의 없이 해외로 입양을 보냈다. 자신의 입양 기록을 보다가 생부와 생모의 이름이 적혀 있을 자리에 ‘무명’이 표기된 것을 발견한 김유리씨도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된다. 그는 자신의 입양과정을 학대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동 인신매매’라 표현하며 제도로 희생된 아이들이 받은 생존 위협에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호소한다.
지난 7월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그 여자는 화가 난다>는 덴마크로 입양된 시인 마야 리 랑그바드가 국가 간 입양 당사자로 체험한 삶의 모든 순간이 ‘여자는 ~ 화가 난다’는 분노의 형식으로 쓰여진 한 권의 시다. 한국에 들어와 국가 간 입양인 모임에서 활동했던 시인은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자신과 딸이었기 때문에 입양을 보낸 부모에게 가지는 개인적인 분노를 국가 간 입양을 주도한 기관과 이를 용인한 사회, 해외입양을 ‘행운’이라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확산시킨다. 시인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중 대다수가 입양된다는 사실에 화를 내고, 그런 미혼모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는 고국에 화를 내고, 성장과정에서 모국의 언어와 문화를 상실하고도 스스로에게 슬퍼할 기회를 주지 않았던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다 결국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화를 낸다.
낮은 출생률로 인해 2075년엔 한국의 경제규모가 필리핀보다 작아진다는 뉴스를 본다. ‘경제’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댓글에 득실거린다. ‘성평등 수준이 낮을수록 출생률이 높아진다’는 말을 내뱉고, 모두를 위해 여성의 후퇴가 당연한 것인데 페미니즘이 이를 거스르고 있다는 주장도 서슴없이 한다. 이런 반응들을 보니 여자를 통제하기에 출생률은 참 좋은 구실인 것 같다. 성비 불균형이 최악을 기록한 해에 태어난 나는 유리씨의 얼굴과 마야의 시를 떠올리다 의아함이 든다. 출생률을 이렇게 만든 당사자들은 ‘고결한 모성을 훼손한 여자들’ 뒤에 숨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는데, 세상은 여자에게 반성을 하라 하고, 사과를 받아내려 한다. 도대체 왜? 나는 영문을 몰라서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