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집값은 더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집값 하락세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5일 발표한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을 보면 1월 첫째 주(2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에 비해 0.67% 하락했다. 전전주(-0.74%)보다 덜 떨어진 것이다. 하락폭이 작아진 것은 서울 아파트값이 하락을 시작한 지난해 4월 이후 39주 만이다. 조사 시점은 ‘1·3 부동산대책’보다 하루 앞섰지만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예고한 영향으로 매물 철회가 늘어나는 등 분위기가 달라졌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한국 집값은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 데다 등락폭도 크다. 글로벌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넘베오(NUMBEO)’ 조사에서는 서울의 집값이 ㎡당 1906만원으로 홍콩(3838만원), 싱가포르(2499만원)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비쌌다. 영국 부동산 정보업체 ‘나이트 프랭크(Knight Frank)’는 지난해 3분기 기준 56개국의 연간 집값 상승률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7.5%로 하락폭이 가장 컸다고 밝혔다. 앞서 2021년 3분기 기준 한국의 상승률은 26.4%로 두번째로 높았다.

한국의 집은 변동성이 커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보수층에서 비판하는 이른바 ‘귀족 노조’를 지대 추구 세력으로 본 것 같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심각한 지대 추구는 부동산 투기다.

집값이 얼마나 떨어졌길래 고강도 대책을 내놨을까. 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022년 1월 고점을 전후한 1년 새 13% 올랐다가 4.9% 하락했다. 물론 송도신도시가 위치한 인천 연수구처럼 2021년 초부터 지난해 1월까지 50% 급등했으나 이후 올해 1월까지 16% 급락한 사례도 있다.

고점 기준으로 지난 1년간 상승폭에 비하면 최근 하락폭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집값은 상승했던 속도에 비하면 훨씬 완만하게 하락하는 중이다.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 자료에서도 급락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전국 아파트값은 지난해 3.12%, 서울은 2.96% 하락했을 뿐이다. 부동산R114가 집계한 지난해 말 기준 서울 아파트 시가총액은 1244조9000억원으로 1년 새 13조6000억원(1.08%) 감소하는 데 그쳤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서울의 PIR(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이 18인데, 10~12 정도로 떨어져야 정상”이라며 “시장은 (적정)가격을 발견하는 자기정화 기능이 있다는 게 내 소신”이라고 했다. 집값이 40%가량 하락해야 하는데, 인위적인 정책 대신 시장의 수요·공급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겠다는 뜻이었다. 정부는 그러나 네 차례 대책을 통해 갈수록 수요 진작에만 매달리고 있다. ‘집값이 더 떨어져야 한다’던 장관의 ‘소신’은 사라졌다.

1·3 대책은 집 사기를 유도한다.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수도권 전 지역을 부동산 규제지역에서 풀었다. 규제에서 벗어난 지역의 주택담보인정비율이 늘어나고, 2주택자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분양가상한제와 전매제한, 실거주 의무 등의 규제도 풀었다. 집값을 끌어올리고,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정부 말대로 무주택 실수요자에게도 집 사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을까. 아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의 집값 급등세는 많은 나라가 비슷했는데, 낮은 금리 영향이 컸다. 이후 집값 하락은 심해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 탓이다. 무주택자라면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떨어질 텐데, 금리는 아직 정점에 이르지도 않았다. 돈 없는 서민으로서는 경기침체까지 예고된 상황에서 고금리로 대출받는 게 여전히 부담스럽다.

다만 자산가와 다주택자에게는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집값 안정과 투기 수요 차단을 위해 다주택자에게 적용했던 규제는 대거 풀렸다. 미분양이 쌓여 자금난에 봉착한 건설업계도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지금 완화한 규제는 나중에 금리가 내림세로 돌아섰을 때 투기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투기가 성행하면 집값이 다시 급등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게 뻔하다.

1·3 대책 이후에도 집값 하락세가 지속된다면 정부는 후속 대책으로 인위적 부양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시장 흐름을 많이 거슬렀으니 이제부터는 제발 그러지 마시라. 반시장 정책을 편 문재인 정부가 집값 급등 부메랑을 맞았다고 비판하지 않았던가. 시장에 맞서 싸우지 않기를 바란다. 집값은 더 떨어지는 게 정상이고, 무주택 서민은 집 구매에 나설 준비가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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