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위성정당이 나왔을까

이관후 정치학자

선거법 개정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음 총선에서 또다시 위성정당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성정당은 왜 생겨난 것일까?

이관후 정치학자

이관후 정치학자

정당들이 정치개혁이라는 대의를 저버리고 이익만을 좇은 결과라고 흔히들 말한다. 한 정치학자는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자신들이 만든 선거법을 헌신짝 버리듯 취급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당들도 할 말이 없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상대가 먼저 위성정당을 만드니 불가피하게 한 것’이라 하고, 국민의힘은 ‘합의하지 않은 게임의 룰을 따를 이유가 없었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위성정당도 결국 선거에 도움이 되니까 정당들이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선거에서 위성정당을 만든 당의 지지율이 3~5%만 빠졌어도, 위성정당은 중단되었을 것이다. 저 정도의 지지율 하락은 수도권 수십 개 지역에서 당락을 바꾸기에 충분하다. ‘준’연동형 비례대표 의석을 몇 개 더 얻자고 자신의 낙선을 기꺼이 받아들일 지역구 출마자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꼼수’라고 비판을 받았지만 기득권 정당들이 위성정당을 밀어붙인 이유는 지지율에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국민들은 왜 개혁의 취지에 반하는 위성정당을 용인했던 것일까? 간단하다. 국민들이 선거법 개정의 취지에 합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국민의 동의 없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지난 선거법 개정은 1년 넘게 국회의 논의과정을 거쳤지만, 정작 국민의 의사를 묻는 절차가 없었다. 공청회 등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선거법 개정 같은 사안에서 국민의 의견을 그렇게 형식적으로만 물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중요하지만, 선거는 민주주의의 내용과 질을 결정한다. 특히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 선거는 국민의 주권을 재구성하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절차다. 어떻게든 제도만 구축해 놓으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다. 제도는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거법을 개정할 때는 왜, 어떤 방향으로, 무슨 취지에서 개정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개혁이 ‘그들만의 야합’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내용이 복잡하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선거법 개정의 법정시한은 총선 1년 전인 올해 4월이다. 그래서 지난해 정치개혁을 요구한 주체들은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애타게 부르짖었다. 양대 정당은 연말까지 들은 척도 않다가, 이제 겨우 당내 논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논의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법정시한만은 지키겠다고 한다.

아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지금 법정시한을 맞추자면, 두어달 만에 선거법 개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불가능하다. 여당은 2월 말까지 전당대회에 정신이 없고, 야당은 당대표의 검찰소환으로 어수선하다. 이런 상황에서 ‘4월까지 선거법 개정’은 졸속적인 생색내기 개혁에 그칠 것이다. 국민적 합의가 없는 선거법이 제대로 작동할 리도 만무하다. 이번에는 위에서 만든 위성정당이 아니라 아래에서 생겨난 형제자매 정당이 판을 칠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법정시한을 어긴 국회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핑계 삼아 형식적으로 정치개혁을 마무리 지으려는 두 정당에 제대로 된 요구를 해서 곤혹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안 그래도 비호감 대선과 대선의 연장전과 지지자들의 정서적 양극화에만 취해 부끄러운 줄 모르는 적대적 상호의존 양당정치가 극단에 치달은 상황이다. 두 정당이 유일하게 함께 원하는 것이 있다면, 선거법 개정을 적당히 뭉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법정시한인 4월까지 2~3개의 복수안을 마련하고, 이에 대해 1000명의 국민 대표가 참여하는 숙의형 공론조사를 5~6월에 거치고, 이를 기반으로 국회와 전문가들이 법안을 마련해서, 9월 정기국회 개회와 함께 여야 합의로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이렇게 합의를 하고 공개적으로 밝힌다면, 어느 한쪽이 당장의 유불리 때문에 정치개혁을 반대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입법부인 국회는 선거법 개정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국민들은 몇 가지로 압축된 제도의 장단점을 듣고 개혁의 원칙을 정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합의한 원칙에 따라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를 설계하고, 이 선거법은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정치적 부조리조차 더 나은 정치를 위한 시행착오였다고 위안 삼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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