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해방역에 노동자는 있는가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전장연의 이동권 시위가 경찰과 장애인들의 대치를 넘어 서울교통공사 노동자와 직접적인 몸싸움과 갈등으로 심화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하철은 1분도 지체할 수 없다’는 발언을 한 이후 교통공사 노동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경찰보다 더 심한 욕설과 표현을 내뱉고, 경찰보다 한발 더 먼저 시위대를 막아서고 있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기획재정부와 서울시가 노동자와 장애인들을 갈등과 폭력의 상태로 내몰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상처는 남는다. “시장의 발언 이전에는 우리에게 이토록 적대적이지 않았다. 지침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눈빛을 보면 단순한 지침 수행 이상을 넘어선 것 같다.” 자신들을 가로막는 노동자들 가슴에는 노동조합 배지가 달려 있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노조는 오랫동안 정부의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에 맞서 ‘노동자가 안전해야 시민이 안전하다’는 주장으로 되받았다. 현실에서 시민들은 노동자의 안전보다는 비용 절감이라는 정부 논리에 찬성하기도 하고, 시민의 안전을 위해 노동자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오 시장이 끄집어낸 ‘정시운행’은 오랫동안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단절해왔다. 정시운행이 관철되려면 노동자들은 속도에 내몰려 위험한 작업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2016년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사망한 하청노동자 ‘김군’의 사고는 정시운행이 시민의 안전 감수성을 왜곡하고, 노동자를 위험에 내몰고 있는 현실을 비극적으로 보여줬다. 구의역 ‘김군’ 사고 당시 전장연 소속 장애인들은 적극적으로 연대했다. 지하철의 인력 감축과 외주화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 교통약자들의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서울시는 “서울지하철이 40년간 고수해온 정시성보다 안전성으로 교통 패러다임을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오 시장의 발언은 시위를 불법화하는 것을 넘어 수십년간 노동자들이 외쳐온 ‘정시성보다는 안전’의 요구를 통째로 부정했다. 이와 함께 구의역 승강장 9-4에서 이뤄진 장애인과 시민, 노동자의 연대는 이동권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혜화역 승강장 5-4에서 멈췄다. 노동자를 ‘시위 진압부대’처럼 내몬 것은 서울시지만, ‘시위 진압부대’만큼 행위한 것은 노동자들이다. 본질적인 원인은 기재부와 서울시에 있지만 모든 행위를 행위의 조건으로 돌릴 수는 없다.

최근 노조는 전장연 시위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장애인과 노동자의 갈등을 조장하는 서울시를 비판하는 성명서엔 이동권 싸움에 보내는 연대의 말은 빠져 있다. 하다못해 오 시장의 ‘정시운행’ 발언에 대한 비판조차 없다. 상급노조인 공공운수노조의 침묵도 길어지고 있다. 노조가 말해온 ‘공공성’ 가치,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은 전장연 시위 앞에 멈춘 것 같다. ‘해방역에 닿을 때까지.’ 지하철 노동자의 오랜 상징적 슬로건이다. ‘장애해방역에 닿을 때까지’ 휠체어 위에 올려진 전장연의 구호에 노동자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노동해방역과 장애해방역은 각각 다른 장소인가. ‘장애해방역’을 무정차 통과한 채 ‘노동자가 안전해야 시민이 안전합니다’라는 안내방송은 온전하게 전달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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