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폐지 아닌 확대돼야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6곳에 있는 학생인권조례의 하나이며, 최초로 ‘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한 법령이기도 하다. 2017년에는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하였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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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현재 폐지 또는 개악될 위험에 처해 있다. 지난 14일 서울시의회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민 조례 청구를 수리했다. 지난해 ‘학생인권조례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부모의 교육권 등을 침해한다’며, 종교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이 낸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주민조례발안법에 따라 서울시의회는 수리일부터 30일 이내에 주민청구 조례안, 즉 조례 폐지안을 발의해야 한다.

한편으로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학교구성원 인권 증진 조례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대체해서 발의하겠다고 하는 해당 조례안에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차별금지 사유에서 삭제되었고, 양심과 종교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도 삭제되었다. 조례의 완전한 폐지까지는 부담스럽기에 대체안을 만들겠다는 것이지만, 학생인권조례가 가진 가치를 완전히 훼손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폐지나 다를 바 없는 처사이다.

2011년 조례 제정이 처음 논의될 때 마주했던 반대와 마찬가지로 이번 폐지 시도의 근저에 있는 것은 결국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동성애를 조장하고 성적 문란을 유발한다는 것이 폐지를 외쳐 온 이들의 주된 주장이다. 나아가 아동·청소년을 미성숙하고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며 주체적 삶을 누릴 수 없는 존재로 보는 차별적 시각에 기반한 주장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시의회가 보수단체의 민원을 받아 교육청에 의견제출을 요청한 학교 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을 보면 이러한 성소수자 혐오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해당 조례안은 ‘혼인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정신적, 육체적 연합을 의미한다’, ‘남성과 여성은 개인의 불변적인 생물학적 성별을 의미한다’와 같이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터무니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서울시의회는 통상적인 업무의 일환으로 한 것일 뿐이라는 변명을 했다. 주민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조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을 시의회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은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적대감을 담고 있는 것으로, 그 자체로 상대방인 개인이나 소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특정 집단의 가치를 부정하므로, 이러한 차별·혐오표현이 금지되는 것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성 보장 측면에서 긴요하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 등을 금지하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5조 제3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며 위와 같이 말했다. 누구도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하며, 혐오와 차별을 막기 위해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는 당연한 헌법의 원칙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번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개악 시도 역시 민주주의의 장에서 허용되는 한계를 넘는 것이며 성소수자를 비롯해 학생들의 존엄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20일부터 3월10일까지 서울시의회는 제316회 임시회를 진행한다. 시의원들이 더 이상 혐오에 동조하지 말고 주민의 대표자로서 주민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증진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길 요구한다. 나아가 더 이상 이러한 후퇴가 발생하지 않고 모든 아동·청소년들이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고 학교 현장에서 혐오와 차별을 막기 위한 학생인권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더 이상 성소수자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학생인권조례는 더욱 확대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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