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와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몰염치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참으로 양심도 없고, 염치도 없다. 지난 15일 노조법 제2, 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뒤에 나오는 경제계와 정부, 보수언론들의 반응을 보고 든 생각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노조법 2, 3조 개정안이 통과되기 직전에 경제계 6단체(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노란봉투법은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예상대로 개정안이 통과되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노란봉투법은 기업할 의지를 꺾고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켜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노조법 개정안은 경제와 산업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가장 시급한 과제인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계를 일방적으로 대변해온 한국경제는 “치명적 혹 더 붙인 노란봉투법, 끝내 불법파업 조장할 텐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놓았고, 보수언론들도 비슷한 기조의 사설과 기사를 일제히 실었다. 여기에 더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관훈토론회에서 “법치주의와 충돌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은 파업 만능주의로 인해 사회적 갈등만 커질 것”이라고 말해서 노동부 장관이 재계 대변인이냐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20일에는 비상경제장관회의까지 열어서 전 정부 차원의 반대를 분명히 했다.

경제계 반응은 몰염치의 극치

이처럼 경제계, 보수언론, 정부가 한목소리로 반대 목소리를 거세게 내는 이유는 이번 개정안이 하청, 간접고용, 특수고용 사업장에서 단체교섭을 촉진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합법 파업의 범위를 확대하여 결과적으로 관행적으로 행해지던 손해배상을 지금보다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개정안도 많이 부족하다. 특히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인 노동조합원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은 빠져 아쉬운 개정안이다. 그런데도 이 난리들이다. 이런 반응들에는 이 개정안을 어떻게든 저지하겠다는 다급함이 묻어난다.

먼저 이정식 장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장관은 한국노총 사무처장 시절인 2016년 노란봉투법 입법을 위한 국회 기자회견에서 “인신구속되고 자유형을 선고받는 것도 억울한데 손해배상 청구 제기·가압류가 밥 먹듯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뜻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파업 노동자를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로 옥죄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한국노총의 간부에서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데, 자리가 바뀌자 말도 달라졌다. 대통령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거부권은 국회를 통과해 대통령에게 넘어온 법률안이 헌법에 위배될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런데 이번에 국회 환노위 소위를 통과한 개정안이 위헌적인 법률안인가? 도리어 헌법 제33조가 보장하는 노동3권을 현실에 맞게 실현하려는 목적의 개정안이고, 이미 대법원과 법원들에서 판례로 축적된 사안들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개정안일 뿐이다.

경제계의 반응은 몰염치의 극치다. 지금의 손배가압류는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하청,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 그리고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 2위를 다투는 장시간 노동에 묶어두면서 사용자 편한 대로 노동자들을 부려 먹을 수 있는 노동조건을 강요하고 있다. 경제위기 시에는 고통을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전담시켰고, 일자리를 늘리기는커녕 양질의 일자리를 없애고, 저임금의 불안정 일자리로 바꾼 게 경제계가 지금껏 해왔던 방식이다. 중대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를 줄이자고 만든 중대재해처벌법의 무력화에도 적극 나서더니 이제는 구시대적인 노조법 조항 몇개를 현실에 맞게 고치자는 개정안마저도 거부한다는 것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노동자들을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무권리 상태의 노예처럼 부리고 싶은 욕망을 가감없이 표출하고 있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이제 제발 억지 좀 그만 부리시라

노동개혁은 한국전쟁 직후 제정된 노조법을 고용형태가 다양해진 현실을 반영해 개정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도록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제 그 첫발을 떼었을 뿐이다. 경제계도, 보수언론도, 정부도 이제 제발 억지 좀 그만 부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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