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의 미적분 선행학습읽음

우석훈 경제학자

천재는 33세 근처에 죽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모차르트는 35세에 사망했고, 슈베르트는 그보다 더 빨라서 31세에 죽었다. 쇼팽은 39세에 영면했다. ‘내 사랑 내 곁에’의 가수 김현식은 33세에 사망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린이’라는 단어를 남겨준 소파 방정환 선생도 그 나이에 돌아가셨다.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색동회를 근거로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은 세계적으로도 아동 인권의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도 어린이에게 인권이 있다는 생각을 잘 못했다. 21세기의 한국, 지금은 어떨까? 불행한 일이지만, ‘동반자살’의 비극이 아직도 벌어진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간단한 원칙이 아직도 우리에게는 거리가 멀다.

“바퀴가 달린 캐리어 모양의 가방을 끌던 초등학교 6학년 고모군(12)은 귀가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미적분’ 문제집을 꺼내 한참을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국민일보, 2023년 2월23일자. “‘올케어반’ 진짜네… 대치동 학원가 씁쓸한 ‘초딩의대반’”)

의대에 가기 위해서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생들 중 고3 수학 과정까지 이미 마친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저출생 문제와 에너지 문제 등 준비하던 글이 있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케어반’은 아동학대 아닐까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올케어반’이 운영되고 의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초등 시절부터 한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기삿거리도 아니다. 다만 그 수준이 고3 과정을 초등학교에 끝내야 하고, 미적분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초조해한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물론 초등학생이 미적분을 공부해도 된다. 그러나 그것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상업적 구조에 의해서 작동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아동학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유엔 아동인권협약의 보호권은 다음과 같다. “모든 형태의 학대와 방임, 차별, 폭력, 고문, 징집, 부당한 형사처벌, 과도한 노동, 약물과 성폭력 등 어린이에게 유해한 것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입니다.” ‘올케어반’은 유엔이 정한 ‘학대’에 해당할 것 같다. 발달권 조항에는 ‘여가를 즐길 권리’ 역시 규정되어 있다.

사교육 문제는 한국 자본주의의 약점 중 약점이다. 부모 측면에서 보면 과잉 지출로 인해 노후 대비에 문제를 일으킨다. 노후에 쓸 돈을 사교육에 털어 넣었으니 결국 은퇴 후에도 계속 일해야 하고, 노동시장에서 청년 고용에 문제를 일으킨다.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출산은 물론 결혼에도 적지 않은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예비 부모들 입장으로 보면 저 무시무시한 사교육비를 감당할 엄두가 나겠는가? “내 아이를 노예로 바칠 일 있냐”며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경제학적으로는 합리적 선택의 하나다. 개인적 자유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것은 공적 영역의 일이고, 국가의 책무다.

모든 사교육 문제를 풀 수는 없지만, 미적분을 강요당하는 초등학생 등 문제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내는 선행학습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사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과연 한국의 대법원이 학원에서 진행되는 선행학습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가 정책적 기준점이다. 사교육 전면 금지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복잡하지만, 이미 심야 학원 영업에 대해서는 금지 선택을 한 적이 있다. 학교, 즉 공교육에서는 선행학습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제도가 학교 담장을 넘어 학원에까지 갈 수 있는지 없는지, 여기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제도 운용의 갈림길이다.

상황이 바뀐 것은 노인빈곤 등 고령화 사회, 끝이 없을 정도로 내려가는 합계출산율 그리고 갈수록 심해지는 학원에서 벌어지게 된 아동학대, 이런 요소들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선행학습을 그대로 두고 출생률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그리고 이제는 아동들의 인권을 중요하게 다룰 정도의 선진국이 되었다. 자녀는 부모 소유물이 아니다. ‘내 돈 내 맘대로 쓰는 게 뭐가 어때서’ 이게 아니듯이, ‘내 자식 내 맘대로 하는 게 어때서’ 이것도 아니다. 아동학대다.

선행학습은 공공의 적이다

만약 대통령이 지금 노조 부패 문제 다루듯이 선행학습 문제 다룬다면, 이게 그렇게 못 풀 문제도 아니다. 대학교 서열 문제는 그냥 두고 사교육 문제만 풀면 안 된다는 얘기도 그만하시라.

다 엉킨 문제이기는 한데, 선행학습은 부정적 효과가 명확하고, 무엇보다도 제도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지, 선후를 20년 동안 따지다가 초등학생이 미적분을 풀어야 하는 시대를 만났다. 해도 적당히 해야지, 이건 너무 심하다. 대통령이 이 문제 풀겠다고 하면, 내가 감히 보장한다. 지지율 50% 훌쩍 넘어설 것이다. 선행학습은 공공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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