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본성이 다르지 않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우리 모두의 본성이 다르지 않다

나를 나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심(心)과 생(生)이 함께 있어 한자 성(性)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나무뿌리처럼 바탕(本)이 되는 본성(本性), 사람 위 하늘(天)로부터 부여받은 천성(天性)으로 적기도 한다. 대비되는 한자로 습(習)이 있다. 고대 갑골문에는 날 일(日)이 대신 적혀 있다 하니, 해 위로 높이 나는 새의 깃(羽) 모습에서 온 한자다. 나면서부터 나는 새는 없으니 어린 새가 날갯짓을 배워 익히는 것과 같은 것이 습(習)이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유교무류(有敎無類)는 <논어> 위령공편에 나온다.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어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열려 있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편, “가르치면 누구나 같아진다”로 해석하면 사람은 모두 달라도 제대로 가르치면(有敎) 누구나 차이 없이(無類) 착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새길 수도 있어, 공자가 습(習)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논어> 양화편의 성상근야 습상원야(性相近也 習相遠也)는 태어난 본성(性)은 누구나 비슷(近)하지만, 어떻게 배우고 무엇을 익히는지(習)에 따라 서로 달라져 멀어진다(遠)는 뜻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는 성(性)과 습(習) 중 습(習)의 역할이 더 크다는 공자님 말씀이다.

과학도 성(性)과 습(習)을 오래 고민했다. 본성/양육, 운율을 맞춰 nature/nurture 논쟁이라 한다. 성격과 능력의 형성에 유전과 환경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이니, 본성/양육 논쟁은 성(性)/습(習) 논쟁이고 유전/환경 논쟁이다. 현대 뇌과학은 우리의 성격과 능력이 결국 뇌 안 수많은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밝혔다. 뇌의 연결구조 중에는 태어나면서 이미 정해진 것(본성)도 있지만, 환경의 영향으로 학습을 통해 변하는 것(양육)도 있다. 결국 딱 정해진 하나의 답은 없다. 뇌의 연결구조가 나를 나로 만들고, 이는 본성과 양육, 성(性)과 습(習), 유전과 환경 모두에 의해서 정해진다. 뇌수술 없이도 뇌의 배선구조를 바꾸는 방법이 바로 읽고 보고 들어서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공자도 얘기했듯 우리 인간은 놀라운 학습 능력이 있어, 주어진 본성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존재다.

작은 인간 집단이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래전 형성된 본성이 지금도 남아 있다. 먹을 것을 발견하면 남김 없이 일단 먹어야 했던 오랜 본성이 약간만 배고파도 냉장고 문을 여는 현대인을 만들어냈다. 거의 볼 일 없는 뱀은 누구나 두려워해도 물에 젖은 전선은 그리 두렵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협력해 살아가는 작은 규모의 인간 집단에게는 처음 만난 외부인 집단을 경계하는 것이 더 나은 생존 전략이었을 것도 분명하다. 공격을 받을 위험, 감염의 위험 등을 막기 위해서다. 집단 안의 끈끈한 친밀감이 집단 밖을 향해서는 혐오와 공격성으로 표출되는 것도 우리 인간에게 장착된 오랜 본성이다.

오랜 본성이라 해서 현대의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늦은 밤 치맥으로 체중이 늘어 성인병에 시달리는 우리 현대인처럼 말이다. 우리와 적을 나누고 적의 공격에 대비해 점점 군사력을 늘려가야 한다는 주장도 인간의 오랜 외집단 혐오의 본성에 기대 힘을 얻는다. “우리가 남이가”의 작은 규모의 내집단 친밀감과 외집단 혐오는 학습과 이성으로 극복해야 할 본성이다. 입장을 서로 바꿔 생각하는(역지사지·易地思之),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이에게도 하지 않는 <논어>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 답이다.

아름다운 지구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전쟁과 살상이 안타깝다. 외부에 대한 공격성을 자꾸만 늘려가는 곳곳의 지도자들,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서로 교환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되는데 점점 높아지는 무역장벽도 걱정이다.

스스로 정한 잣대로 우리와 저들을 나누고, 서로 상대에 대한 혐오를 키워가는 SNS의 요즘 모습도 걱정이다. 인류가 긴 노력으로 점점 확대해온 공감의 반경이 요즘 거꾸로 다시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性)을 습(習)으로 극복해 나쁜 본성은 줄이고 좋은 본성은 늘려가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성상근야 습상원야’를 다시 읽는다. 배우고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우리 모두의 본성이 다르지 않다(性相近也)는 깨달음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그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아니 애초에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경계는 허상이라고 애써 다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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