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중심의 미디어 정책을 우려한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정부가 추진하던 윤석열 대통령 공약인 ‘미디어혁신위원회’는 ‘미디어콘텐츠산업발전위원회’로 명칭을 확정하여 곧 출범할 모양이다. 애초 혁신위원회가 다룰 것이라고 예정됐던 의제들도 규제 완화에 방점이 찍혀 있었으니, 아예 대놓고 산업 발전을 위한 논의 기구라고 내세우는 것이 소위 ‘정명’이라고 생각한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혁신위원회를 주장할 때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의제로 포함하고 있었고, 정부는 물론 기업, 학계, 시민사회 등을 포함해 구성한다고 했으니 공적 의제 논의가 전혀 배제되지는 않으리라 기대할 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위원회의 설치 목적과 의제도 이름처럼 미디어콘텐츠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출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된다. 이 위원회가 관계부처 정책 역할 조정과 규제혁신도 담당할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운영도 정부 주도로 하고 전문가 의견을 듣는 정도라고 한다. 시민사회는 고려치 않는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산업 발전도 정책 목표의 하나일 수는 있다. 하지만 사회는 서로 다른 주체와 가치가 충돌하는 곳이다.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 전체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다. 그래서 사적 이익 추구가 아닌 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사적 이익 추구 과정에서 훼손될 사회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오는 이야기는 시장 진흥과 이에 필요한 규제 완화에 집중해 있다. ‘정보통신 기반의 경쟁력 있는 콘텐츠 육성과 투자 확대’ ‘OTT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해외진출 지원 등등의 육성 정책과 이에 필요한 자율심의 체계’ ‘인허가 기간 연장’ ‘소유 제한 완화’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한다. 거대 플랫폼이 장악한 세계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시장 선도성이 과연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이것이 가능하도록 지원한다는 명분 아래 무엇을 내줄지 우려된다. 시장 형성이 어려운 구조이니 투자를 확대하려면 투자 의사를 가진 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질 것이다. 대주주의 소유 지분 제한을 상향시키거나 없애고, 대기업의 기준을 완화하고, 인허가 기간을 늘려주는 것들이 예상된다. 방송 광고 규제 완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움직임이 위험한 몇 가지 이유만 제기해보자. 법적으로 대기업 소유제한은 언론 활동을 하는 매체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애써 외면한다. 대기업이 OTT에서 잘나가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을 설립하거나 투자할 길은 열려 있다. 그런데 굳이 시사 보도까지 할 수 있는 언론의 지분 확대가 쟁점이 되는 것일까. 언론사를 소유하여 기업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싶은 대기업의 바람을 들어주려는 것일까? 또 자율심의 전환을 강조하는데 이미 존재하는 자율심의들이 실효적이라고 보는지 의문이다. 자율심의의 실효성을 갖출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그것은 타율 규제를 면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지 않을까?

한편 모든 곳에서 광고와 콘텐츠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어 폐해가 큰데, 사회적 책무가 큰 매체마저 광고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한다.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고 투자를 활성화하고 산업을 키우겠다는 정책의 폐해는 고스란히 수용자, 소비자인 시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방송산업 시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규제를 완화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가져온 피해를 절실히 경험한 바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친시장주의를 미디어 관련 정책에서 구현하려는 것이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허위조작정보, 혐오차별 표현으로 정치, 사회 양극화가 심한 현실이다. 신뢰할 만한 매체와 그 매체의 활동이 가능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공공성의 가치에 사회가 좀 더 천착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정부가 아니라면 국회라도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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