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사건 관전법읽음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처벌 법규의 해석과 적용에서
엄격주의냐 완화 쪽이냐 택할지는
결국 판사의 혜안에 달려 있다

그것은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동시에 읽어내는 능력이다

개념은 힘이 세다. 어떤 개념이 생성되어 통용되기 시작하면 사물과 현상을 보는 시선을 한쪽으로 끌고 간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성인지 감수성’이란 말의 위력을 보라. 법의 영역에서도 전통적 해석론을 벗어나는 새로운 개념의 창출이나 도입은 새로운 법적 효과를 낳는다. 헌법재판소가 처음 선보인 ‘숨쉴 공간’이란 개념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에서 차용한 것인데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개념은 잘못 수용되어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폐기된 ‘반성적 고려’라는 개념은 한시법의 소급적용을 일부 배제하여 처벌을 면하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독일 형법의 해석론에서 유래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엉뚱하게도 법이 바뀌어 처벌할 수 없게 된 행위를 처벌하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법 개정 시의 재판시법주의라는 원칙을 망가뜨린 전력이 있다. 특검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하려고 들고나온 ‘경제공동체’라는 개념은 아직도 의심스럽다.

어떤 사실이 일단 이런 유의 개념에 포섭되면 경계선상의 행위를 처벌하거나 처벌하지 않는 법현상이 생겨난다. 공동정범에 관한 해석론 중 ‘공모’나 ‘기능적 행위지배’ 등의 개념은 자칫하면 애먼 사람을 잡는 데 쓰일 수 있다. 거꾸로 배임죄는 미국이나 프랑스에선 형법에 없는 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적용이 위험할 정도로 확대되었기에 이를 막는 ‘경영 판단’이라는 개념이 대법원 판결로 자리 잡았다. 이런 개념들은 때로 양날의 칼이다. 처벌을 면하게 하려는 개념이든, 처벌하려는 개념이든 간에 어떤 사실이 여기에 포섭되면 다른 생각 없이 바로 그에 따른 효과를 주고 포섭되지 않으면 허투루 반대의 효과를 줄 수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국회의 체포동의안 부결로 기각되었다. 구속영장청구서에 적시된 혐의사실은 크게 보아 성남시와 성남도시개발공사의 내부비밀을 알려줘 민간사업자들에게 이익을 얻게 해준 행위(이해충돌방지법·부패방지법 위반),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적정 배당이익 대신 확정이익만 배당하게 해 공사에 손해를 입힌 행위(배임), 네이버 등 사업자들로부터 인허가 관련 편의를 봐주는 대신 성남FC에 후원금을 내게 한 행위(제3자 뇌물제공) 등으로 되어 있다. 그중 이해충돌방지법 등 위반 혐의에서는 이 대표가 정보 제공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배임 혐의에 대해 이 대표는 사업자들과의 결탁행위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장동 사업에서의 여러 결정은 지방자치단체가 개발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내린 합리적 정책 판단에 기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편다. 제3자 뇌물제공 혐의에 대해서는 문제의 돈이 후원금이 아니라 광고비라는 등의 항변을 내세웠다.

이 대표의 주장 중 사실에 관한 부분은 증거로 가려지겠지만, 주목할 것은 법리적 쟁점에 대한 판단이다. 이해충돌방지법 등 위반 혐의에서는 정보 제공 사실이 있더라도 그것이 사업자들의 이익 취득과 사이에 형사책임을 지울 만한 ‘상당인과관계’에 있는지가 문제다. 배임 혐의에서 이 대표의 주장처럼 확정이익 방식을 택한 것이 경기변동에 따른 손실 가능성과 사업의 안정성을 고려한 결과였다면, 경영 판단에 유사한 정책 판단의 개념이 방호벽으로 등장할 것이다. 제3자 뇌물제공 혐의에서는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어느 기업으로 하여금 행정목적 달성에 필요한 어떤 사업을 후원하거나 조장하기 위해 제3자에게 돈이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게 하는 행위는 적극적 조장행정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부패 방지를 위한 뇌물죄를 적용함이 타당한지 여부다. 장차 법정에서는 부정(不正)함 또는 대가성과 이를 부인하는 적극적 조장행정행위라는 개념이 맞설 것이다. 이런 다툼은 넓게 보아 죄형법정주의의 현대적 과제에 관계되어 있다. 즉 처벌법규의 해석과 적용에서 엄격주의를 택할지 아니면 이를 완화하는 방향을 택할지의 문제인 것이다.

개념어는 그 생성의 경위나 배경과는 별개로 이론상 중립적이다. 그러나 모든 언어는 맥락 속에서만 올바로 기능하는 것이다. 사건을 전체적으로, 때로는 전복적으로 보지 않고 개념만을 연역하여 그 안에 사실을 구겨넣다 보면 판결은 종종 엉뚱한 결론으로 향하게 된다. 이런 개념이 누구나 알 만한 이야기를 어지럽게 색칠하여 법망을 빠져나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지, 반대로 법률용어로 감싸 놓아 어지간해서는 알아채기 어려운 공적 폭력을 누구도 알 수 있게 드러내어 처벌을 면하도록 기능할지는 결국 판사의 혜안에 달려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동시에 읽어내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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