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 때 빠지고 빠질 때 끼는 정권

이창민 한양대 교수

윤석열 대통령 당선 1년이다. 임기 초반에 이 정권은 MB 시즌2로 불렸다. MB 시절의 사람들이 복귀했고 자유시장주의, 규제완화, 감세 등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아마 낮은 대통령 지지율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정권이 지지율에 민감한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끊임없는 좌충우돌이라는 거다. 한국사회 누구도 “현 정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 2월 윤 대통령은 YS의 개혁정신을 이어받겠다고 했다. 그 후 일본 강제징용문제에서는 ‘DJ-오부치 선언’의 계승을 얘기했다. 그러나 은행의 약탈적 영업이라는 언어까지 동원함으로써 시장에서는 박정희·전두환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다고 한다. 노태우·노무현·박근혜만 아직 등장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교수

자기들이야 진정한 실용주의라고 주장하겠으나 지금까지만 보면 스텝이 꼬여도 한참 꼬였다. 이렇게 스탠스가 꼬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번째, 현 정권은 전 정권의 정책과 반대로 가는 것이 기조이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어느 정도는 당연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너와는 다른 길” 기조는 위험하다. 그것이 재벌은 문제가 없고 은행·통신 등 주인 없는 기업이 문제라는 코미디 같은 논리를 생산하게 된다. 개혁은 지지율을 위해서 필요한데 전 정권에서 재벌개혁을 했으니 우리는 그 반대로 은행·통신 개혁을 하겠다는 것이다. 두번째, “너와는 다른 길” 기조는 중앙정부는 책임을 지지 않고 모든 문제의 책임을 민간에 떠안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전 정부가 국가를 빛 더미로 만들었다는 논리를 계속 밀고나가야 되기 때문에 모든 문제의 해결에서 중앙정부는 일단 빠지고 본다.

대규모 추경이야 물가안정 기조에 따라 조심스러웠다 치더라도 핀셋정책으로 할 수 있는 미세재정동원도 모든 옵션에서 제외한다. 급기야 강제징용피해자 배상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자금이 투입된 포스코, KT, KT&G 등 민간기업의 자발적(?)기여로 풀겠다는 발상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낄 때 빠지고 빠질 때 끼는 정부의 탄생이다.

정권이 스탠스가 꼬이면 자기만 비틀거리지 않는다. 보자. 대통령, 장관, 한은 총재 등은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은이 기준금리를 낮추면 향후 경기침체와 싸우겠다, 금리를 올리면 향후 경기위축을 감안하고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던지는 거다. 그러면 시장이 이 신호에 반응해서 행동한다. 즉, 시장금리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정책이 먹히지를 않는 것이다. 이래서 통화정책은 해머(Hammer)라 불린다. 한은이 크게 때리고 나머지는 시장의 반응에 따라서 정책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과연 현 정부는 시장에 무슨 신호를 주고 있는 것인가? 돌아보면 작년 중반부터 이복현 금감원장은 시중은행 금리인하를 공개적으로 자주 언급했다. 이 발언이 시원하다고 일부 호응을 얻었으나 당시 한은은 적극적인 금리 인상 신호를 시장에 주고 있었다. 이복현 원장은 시장에서 금감원장이 아니라 윤핵관 검사로 읽는다. 이 점이 중요하다. 통화정책의 금리 인상 기조를 대통령이 나서서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현 정권은 법·제도를 통한 정책 실현이 아니라 민간에 대한 검치 압박으로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것으로 시장에서 읽는다. 그러면 시장의 반응은? 생색낼 수 있는 거 몇 개 하고 이 시기가 지나가기만을 바라게 된다. 현 정권 초반에 재벌들이 급하게 무려 1000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냈던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보험 들었다 시간 지나고 깨면 그만이다.

현 정권의 문제는 향후 주식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얼마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상근전문위원으로 검사 출신이 임명되었다. 이 위원회는 국민연금의 투자기업 주주권을 자문하는 기구로 주로 금융·회계 전문가가 맡아왔는데 여기에 비전문가 검사가 임명된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국민연금의 주주행동주의는 지배구조개선을 통해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실증적 근거가 뒷받침되었던 것이지 단순히 정치적인 논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전 정권의 국민연금 주주권리활동을 기업 옥죄는 사회주의정책으로 비판했던 것이 현 정권이다. 심지어, 현 정권은 작년 7월 원화가치 급락에 기재부가 국민연금에 환율방어에 나서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하는 환율안정화에 국민연금의 돈을 이용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독립성에 대한 침해이자 연금수익률에 해를 끼치는 행위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너와는 다른 길로 가다가는 국민노후자금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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