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준석은 그런 오판을 했을까?

[강준만의 화이부동] 왜 이준석은 그런 오판을 했을까?

“편견을 세탁한다면 인간의 지성이 훨씬 향상될 것이다.”(프랜시스 베이컨) “계몽은 편견으로부터의 해방이다.”(이마누엘 칸트) “편견을 조심하라. 편견은 쥐와 같고, 인간의 정신은 덫과 같다. 편견은 그 덫에 쉽게 들어가지만 빠져나가긴 어렵다.”(프랜시스 제프리)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은 악령, 그것도 최악의 악령에 사로잡힌 것과 같다. 편견은 진실을 차단하고 자주 파멸적 과오로 인도하기 때문이다.”(트라이언 에드워즈)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편견에 대한 이런 비판은 무수히 많다. 1950년대에 편견 연구에 주력한 미국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편견을 쉽게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연구를 하면 할수록 그게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1956년 남아프리카를 방문한 올포트는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고 결론지었다. 인간은 ‘부족의 동물’이기에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절망하는 것은 역사의 오랜 교훈을 오독하는 것”이라고 했다.

편견 극복의 가장 큰 장애는 내로남불이다. 캐나다 언론인 댄 가드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서는 유해한 심리적 편견을 잘 포착하면서도, 정작 자기가 내린 판단은 객관적이라고 인식한다”며 “이것 역시 심리적 편견의 일종으로 이른바 ‘편견에 대한 편견’이다”라고 말한다. 바로 이게 문제다. 편견을 넘어서려고 하기보다는 ‘편견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려고 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다. 차라리 우리 인간은 ‘편견의 포로’임을 인정해야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남의 편견을 규탄하는 나 자신도 돌아볼 수 있다.

잠시나마 편견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던 상황에서 주문했던 책이 도착해 머리도 식힐 겸 독서를 좀 하기로 했다. 전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의 최근 저서인 <거부할 수 없는 미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준석의 편견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편견에 대한 사례연구의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조선시대에 태어났어야 할 이들의 정치”라는 제목의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가 “정치가를 만드는 것은 탁월한 통찰력이 아니라 그들의 성격이다”라는 볼테르의 말을 인용한 대목에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5개월 전 “바보야, 문제는 ‘성격’이야!”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에서 이준석의 성격이 그의 정치적 유능함을 망쳤다는 주장을 했었기 때문이다. 혹 자신의 성격에 대해 말하려는 걸까? 그게 아니었다. 자신의 정적(政敵)들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시대 정치인들은 유교적 질서 속에서 절대적 충성의 대상을 찾아다니며,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반문하지 못하는 일방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양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 양태는 조선 말기로 갈수록 극에 달해 매관매직을 연상시키는 자리 나눠주기를 자행하기도 했다.”

그런 작태가 지금 국민의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권위에 순종하고 자리 나눠먹기를 하는 건 어느 정권에서건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그걸 정치인 개인의 성격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나는 이준석이 볼테르의 말을 자신에게 적용시켰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려웠다.

이준석은 대통령 윤석열을 비롯해 다른 정치인들의 성격적 한계나 문제를 포착해 비판하는 데엔 유능하지만, 자신의 성격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엔 무관심하거나 무능한 것 같다. 이는 남의 편견은 잘 지적하면서도 자신에겐 마치 그 어떤 편견도 없다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이준석의 정치 스타일을 상대가 죽어야만 자신이 사는 ‘치킨게임 정치’라고 했는데, 이걸 자연스럽게 여기는 그의 성격 또는 편견이 안타깝다.

편견 극복의 최대 장애는 내로남불

“최고위원도 친윤 일색…이준석계 모두 탈락”이라는 경향신문 기사 제목이 말해주듯이,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결과는 이준석의 패배로 끝났다. 물론 그의 지지층이 여전히 15% 정도 실존한다는 게 입증된 셈이어서 ‘절반의 성공’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긴 했지만, 이준석 자신의 기대에 크게 못미친 결과였다는 건 분명하다. 그는 전당대회 이틀 전까지만 해도 당대표 후보 천하람의 2위를 “100% 확신한다”고 했고,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허은아·김용태의 당선을 낙관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낙관이었다.

이준석과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은 자신들이 유발한 기회비용을 뼈아프게 생각하고 있을까? 기회비용, 즉 “하나의 대안이 선택되었을 때 다른 대안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이익의 상실”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윤석열과 대통령실의 거칠고 오만한 경선 개입을 응징함으로써 국민의힘과 한국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무산시키고 말았다. 민심이 아닌 당심에 대한 오판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옳건 그르건 유권자인 국민의힘 당원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게 어려운가? 그들은 윤 정권의 성공을 원한다. 사실상 야당과의 전쟁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를 바란다. 윤석열이 예뻐서가 아니다. 대통령 탄핵으로 궤멸되다시피 했던 보수 정치의 갱생을 위해서다. 그들은 경선 개입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야당의 지도부 구성 과정도 퇴행적이라고 생각했다. 두 거대 정당 모두 거기서 거기라고 보았기에 그걸 한국정치의 한계로 이해했고, 윤석열을 거부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경선 개입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수준에서 윤석열에 대한 생산적 비판은 필요하지만 “넌 안 돼”라는 식의 거친 공격은 절대 금기다. 이준석이 혐오하는 윤핵관과 대통령실의 행태를 비판하더라도 윤석열과 분리시켜 “누가 더 윤석열의 성공에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점을 중심으로 비판해야 한다.

‘편견에 대한 편견’ 넘어서길 기대

그러나 놀랍게도 이준석은 윤석열에 대한 증오·혐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식의 공격을 택했다. 윤석열을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희대의 악당 엄석대로 비유했다. 윤석열을 ‘유튜브 보는 할아버지’로 폄하하기도 했다. 이준석은 <거부할 수 없는 미래>에선 간신배들을 맹비난하면서 “군주가 이들을 멀리해야 하는데 사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했다. 윤석열은 구제불능이라는 말인가. 이 내용은 3월5일 언론에 널리 보도되었다.

이준석이 일단 천아용인을 띄우는 데에 성공했을 때, 그의 소임은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이후엔 침묵하면서 천아용인 스스로 설 수 있게끔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윤석열의 취임 100일 성적에 겨우 25점을 준 데다 ‘양두구육(羊頭狗肉)’에 이어 녹슨 수도꼭지를 금 수도꼭지라며 팔아먹은 사기 혐의를 제기했던 지난여름의 복수혈전을 다시 벌이는 길을 택하고 말았다.

그렇게 하는 게 천아용인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본 그의 어이없는 오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준석이 아니었다면 다른 목소리가 분출해 친윤 일색의 지도부 구성에 다양성을 살리는 동시에 대통령실의 오만한 구태를 교정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는 그 기회를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라 천아용인 동지들의 처지도 매우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

전당대회 결과에 대해 “오늘로서 국민의힘의 정당민주주의는 완전히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민주당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준석은 정의롭고 용감한 의인(義人)이었을 게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의 사랑을 받는 보수 정치인이 되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든 게 아니다. 누구보다 더 프로 정신을 강조해온 투철한 현실 정치인답게 일단 국민의힘 내부에서 지지를 얻어 자신의 튼튼한 발판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윤 정권의 극우화를 촉진해 무얼 크게 얻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진영을 초월해 한국정치의 발전을 간절히 원하는 나로서는 그가 저지른 모순과 자해(自害)가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이 모든 게 한편의 코미디처럼 여겨진다.

나는 이준석이 자신에겐 그 어떤 편견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편견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길 바란다. “나는 객관적이지만, 너는 편견의 포로다”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어떤 편견의 포로이겠지만, 이해관계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제3자적 위치의 상대적 이점에 근거해 이 글을 썼다. 아, 한 가지 편견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 나는 이준석의 정치적 재능을 몹시 높게 평가했기에 그가 과도한 자기애와 나르시시즘의 편견에서 해방돼 부디 그 재능을 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편견이 있음을 고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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