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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이 기사는 2023년 3월 15일자 경향신문 ‘[여적]여배우의 전성기’을 재가공하였습니다.〉

사계절의 순환적 시간감각을 가졌던 농경사회와 달리 현대인의 시간감각은 선형적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직선 위에 놓는다. 성공으로 가는 과정도 우상향 직선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예상궤도를 벗어나는 작은 실패에도 쉽게 초조해하고, 궤도에서 멀어지면 회복을 비관한다.

공연예술가 요안 부르주아는 ‘성공은 선형이 아니다(Success isn’t linear)’ 퍼포먼스에서 이 같은 고정관념을 부순다. 성공의 계단을 오르면서 그는 수없이 트램펄린 위로 떨어진다. 기껏 다시 몸을 일으켜도 더 낮은 칸에 머물고, 더 높은 칸에 오르고도 정상을 눈앞에 두고 추락한다. 그리고 재도전을 통해 꼭대기에 올라선다. ‘전성기는 지났다’는 중력 같은 속삭임을 그는 물리친다.


3월 12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양쯔충(60·양자경·미셸 여)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3월 12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양쯔충(60·양자경·미셸 여)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2023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말레이시아 출신 배우 양쯔충(60·양자경·미셸 여)의 여정은 이와 닮았다. 그는 넘어졌을 때 넘어진 채로 남아 있기를 거부했다. 영국 왕립 발레학교에서 척추 부상으로 접은 발레리나의 꿈을 훗날 유연한 무술 연기의 발판으로 삼았다. 1985년 ‘예스 마담’ 전성기 이후 결혼과 이혼으로 빚어진 5년 공백은 할리우드로 건너가 <007 네버다이> <와호장룡> 등에 출연해 넘치도록 메웠다. 이번 작품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는 ‘환갑 여배우는 나이가 많다’며 은퇴를 권유받았다고 한다. 그는 오스카 수상 소감에서 “꿈을 크게 꿔라. 여성 여러분,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말라”고 말했다.

여배우의 전성기는 성적 대상화되는 젊음과 동의어가 아니다. 그동안 쌓아온 경륜을 담아낼 수 있는 배역이 충분치 않을 뿐이다. 올해 88세인 배우 주디 덴치는 60세에 <007 골든아이>에 ‘M’ 역을 맡으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70~1980년대 ‘호러퀸’으로 명성을 떨쳤던 제이미 리 커티스도 그간의 부진을 딛고 64세 나이로 이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여성 서사를 다루는 작품이 늘면서 여배우들이 기존의 전형적인 배역을 넘어 저력을 발휘할 기회가 늘고 있다. 전성기는 흘러가는 게 아니라, 되찾는 것이다. 이들이 설 수 있는 자리만 있으면 된다.

▼ 최민영 논설위원 mi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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