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의 다음과 ‘다음 소희’는 지금이 정한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물리학의 다음과 ‘다음 소희’는 지금이 정한다

길에서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잠깐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자니 아쉬워 친구가 다음에 밥 한번 같이 먹자고 말한다. ‘다음’이 정확히 언제냐고 묻지는 말자. 갑자기 말 더듬으며 당황하는 친구 얼굴을 보게 될 테니. 그냥 “그래, 다음에 보자”가 적당하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우리는 시간의 순서로 일어나는 사건 중 현재를 기준으로 미래의 정해지지 않은 시점을 ‘다음’이라 할 때가 많다. 다음은 언제가 아니다.

다음은 시간의 화살을 따라 늘 미래를 향한다. 그 순간이 오기 전에 먼저(pre-) 말하는(dict) 것이 예측(predict)이어서, 물리학은 다음을 지금 말하는 예측에 관심이 많다. 고전역학에서 지금 이 순간의 물체 위치와 속도를 알면 다음 순간의 물체 위치와 속도는 딱 하나로 정해진다. 지금의 상태가 다음의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양자역학도 마찬가지다. 다음의 상태는 결정론적으로 지금 정해지지만 주어진 양자 상태에 대한 측정과 관찰의 결과가 확률로 주어질 뿐이다. 물리학의 다음은 지금이 정한다.

뉴턴의 고전역학에서는 물체에 주어지는 지금의 힘이 지금의 가속도(加速度)를 결정한다. 지금의 가속도를 알면 다음의 속도를 알고, 지금의 속도를 알면 다음의 위치를 안다. 지금으로부터 바로 다음을 알아내는 과정을 시간 축을 따라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계속 이어가면 아무리 먼 미래라도 지금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고전역학으로 이해하는 운동 중 가장 간단한 것이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 없는 경우다. 힘이 없으면 가속도가 없고, 가속도가 0이면 속도(速度)에 더해지는(加) 것이 없어 다음의 속도는 지금의 속도와 같다. 물체는 지금의 속도와 정확히 같은(等) 속도로 계속 움직이는 등속(等速) 운동을 하게 된다. 물리학에서 속도는 종이 위에 연필로 그린 화살표처럼 방향과 크기를 함께 갖는 벡터다. 등속으로 운동해 속도가 늘 같다는 말은 물체가 움직이는 빠르기뿐 아니라 움직이는 방향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등속 운동을 하는 물체는 늘 속도가 같아서 시간이 지나도 늘 같은 빠르기로, 그리고 늘 같은 방향인 직선을 따라 움직인다. 힘이 없다면 다음은 지금과 늘 같다.

고전역학의 다음을 지금과 다르게 하는 것이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다. 가벼운 물체의 다음 경로를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질량이 작은 물체는 약한 힘에도 크게 반응해 커다란 가속도를 만들어 속도를 크게 바꾸고 미래의 위치도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질량이 커 관성도 큰 물체는 지금과 다른 다음을 위해서 큰 힘이 필요하다.

물리학뿐 아니다. 사회와 시대에도 관성이 있다. “원래 늘 그랬던 것인데 뭘 유난하게”의 마음가짐이 사회의 관성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세상에 “원래 그랬던 것이어서 다음에도 늘 그럴 것”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경험하고 목격했던 학교에서의 체벌은 이제 먼 과거의 얘기고, 도대체 여자가 무슨 법대를 가고 의대를 가냐는 그릇된 생각도 이제 거의 사라졌다. 절대로 바뀔 수 없는 것은 세상에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눈 질끈 감으면 다음은 지금과 같아서, 다음을 바꾸려면 지금 바꿔야 한다.

정주리 감독의 영화 <다음 소희>를 인상 깊게 관람했다. 최준영 작가의 인문학공동체 수원 ‘책고집’에서 열린 감독과의 대화시간에도 참석했다. <다음 소희>는 현장실습을 나간 한 특성화고 학생 소희의 이야기다. 소희의 안타까움에 관객이 절절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지만, 영화 속 여러 가해자는 다른 의미에서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소희의 자살 이전 자취를 따라 범인(犯人)을 쫓는 형사가 결국 마주친 이들은 숱한 범인(凡人)이었다. 엄청난 관성을 가진 거대한 사회 구조는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계층구조의 연쇄 사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사슬의 가장 끝단에 소희가 있었다.

영화 제목 <다음 소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인 소희의 안타까운 죽음 뒤에도 이어질 다음 소희를 일반명사로 말한다. 힘이 존재해야 지금과 다른 다음이 만들어지는 물리학을 떠올리며, 모두의 힘이 함께 모여 달라질, 다음 소희가 사라진 소희 다음을 소망한다. ‘다음에도’를 ‘다음에는’으로, 그리고 ‘결코 다시는’으로 바꾸는 것은 여럿의 부릅뜬 눈이다. 세월호·이태원 참사를 겪고 <다음 소희>를 보면서 ‘결코 다시는’을 애써 떠올린다. 다음에는 달라질 것이라 누가 말하면 다음이 도대체 언제냐고 따져 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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