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복합시설 활성화 정책의 허구읽음

홍인기 교육정책 비평가

10년 넘게 교육정책을 지켜보면서 교육부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싶지 않은 정책은 금요일 오후에 발표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주말에는 적잖은 기자들이 쉬는 데다 주말 뉴스를 다루는 신문 지면도 적기 때문이다. 지난 17일(금요일) 교육부 장관이 주관하는 제2차 사회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사회관계장관회의 안건은 네 가지가 있었다. 가장 관심 가는 분야는 ‘학교복합시설 활성화 방안’이다. 학교복합시설은 학교에 문화·복지 시설을 설치하고 지역과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홍인기 교육정책 비평가

홍인기 교육정책 비평가

학교복합시설 사업은 지역소멸에 대응해 지역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돌봄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교육부는 발표했다. 브리핑에서는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먼저 말하고 이주호 장관이 다음으로 발표했다. 단순히 학교시설을 지역에 개방하는 것을 넘어 국가균형발전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학교복합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142개 지역부터 우선 설치되도록 매년 40개교씩 총 200개교에 5년 동안 사업공모를 추진한다고 한다. 기존에 학교복합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지방에 우선적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매년 40개교에 75억~105억원(평균 90억원)을 쏟아붓는다고 한다. 3600억원은 교육부가 사용할 수 있는 특별교부금 2조2700억원의 16%에 해당하는 큰돈이다. 건설이나 시설개선 사업으로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것이다. 특별교부금은 단위가 크기 때문에 늘 부정의 유혹이 뒤따르는 사업이었다. 교육부 감사에서 큰 문제는 특별교부금 사업에서 발생했다.

이 사업은 정부의 의도와 달리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지역의 학교소멸을 가속시킬 위험이 있다. 새로운 사업지로 선정될 가능성이 큰 전남 고흥군을 살펴보자. 이 사업이 고흥군에 유치된다면 당연히 군청과 가까이 있는 A초등학교가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 돌봄 수요도 많고 고흥군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고흥군에는 분교를 포함해 19개 초등학교가 있다. 이 중에서 A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713명으로 고흥군 전체 초등학생 1662명 중 42.9%가 다니는 학교다. 두 번째로 학생이 많은 B초등학교는 334명이다. 세 번째로 학생 수가 많은 C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줄어 73명이다. 상위 2개 초등학교에 전체 고흥군의 학생 63%가 다니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수도권 과밀화 현상이 문제지만 지역 안에서는 군청 소재지와 같은 중심지로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지역의 큰 초등학교에 수영장과 돌봄센터, 문화센터와 같은 편의시설이 추가적으로 생기면 초등학교 취학을 앞둔 소규모 학교 부모들이 군청 소재지 지역으로 이사하고 싶은 욕구가 더욱 커지게 된다. 지역의 30명 이하 초등학교 소멸이 가속화될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장기적으로 교육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복합시설 지원 방안은 지난 정부에서도 추진했지만, 관리와 운영에 있어서 학교와 지자체 간 마찰이 심했던 사업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관리 운영비 일부를 교육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지원하기 위해 관련 법령 개정도 추진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이 시설들의 관리 유지 보수비는 이후 매년 교육예산에 부담을 주게 된다.

지난해 10월 기준 5년 이내에 소멸위험이 있는 전교생 30명 이하 초등학교는 분교장을 포함해서 전국에 643개교이다. 학생 수로는 1만1567명이다. 이 학생들에게 ‘소멸위험지역 초등학생 수당’으로 매달 50만원씩 지급하면 1년 동안 약 700억원이 소요된다. 교육부가 학교복합시설 사업에 매해 지출하겠다고 한 예산의 약 5분의 1도 안 되는 규모이다.

소멸위험학교에 월 50만원의 학생수당을 지급하는 것과 건물을 세우거나 리모델링하는 것 중 어느 것이 학교소멸과 지역소멸을 막을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소멸위험지역 초등학생 수당이 정말 의미가 있는지 시범 사업이라도 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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