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악당, 나만 아니면 돼?읽음

차준철 논설위원
기후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 22일 열린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정부안’ 첫 공청회에 참석해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의 발언 때 기습 손팻말·펼침막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 22일 열린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정부안’ 첫 공청회에 참석해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의 발언 때 기습 손팻말·펼침막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봄꽃이 벌써 다 폈다.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벚꽃도 3월에 개화했다. 서울에선 지난 25일 벚꽃이 공식 개화해 지난해보다 10일, 평년보다 14일 앞당겨졌고 2021년보다 단 하루 늦어 역대 두 번째로 빨랐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 했던 대학생들의 우스개는 옛말이 됐다. 4월 들면 꽃이 떨어지기 시작해 이내 벚꽃은 ‘있었는데 없었다’가 될 것이다. 그러고는 금세 여름이다. 5월부터 여름인가, 올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까. 딴건 몰라도, 북극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음은 알 만하다.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남부지방에선 지난해부터 이어진 50년 만의 역대 최악 가뭄이 악화일로다. 곳곳의 저수지 바닥이 메말라 쩍쩍 갈라졌고, 물이 부족해 모내기도 못할 판이다. 주민들은 장기간 단수와 제한급수로 일상생활의 고통을 겪고 있다. 그 극심한 가뭄이 중부지방으로도 확산하고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이 더 잦고 강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이젠 연중 해소되지 않는 상시 재난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가 오지 않으면 답이 없는 현실. 이 또한 기후위기가 일상에 닥쳤음을 체감할 수 있는 일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최근 공개한 제6차 종합보고서를 보면 지금 절박한 기후위기 상황을 알 수 있다. 전 세계 100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이 보고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인류의 교과서로 불린다. 이번 6차 종합보고서는, 현재 추세라면 2040년 이전에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할 것이라는 관측을 담았다. 지구 생태계가 회복 불가능한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시기가 이전에 예측됐던 2052년보다 10년 이상 앞당겨진다는 경고다.

그래서 보고서는 ‘감축’을 누차례 강조한다. 지구 기온을 높이는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급격히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1.5도 상승을 억제하려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감축해야 하는데, 이는 세계 각국이 제시한 감축목표를 모두 달성해도 불가능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파국을 막을 골든타임이 8년밖에 남지 않은 터라 깊고 빠른 감축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런 보고서가 나온 다음날 한국 정부가 처음 발표한 탄소중립 기본계획은 더 강화된 감축 대책을 마련하라는 IPCC의 주문에 한참 어긋난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40% 감축’으로 유지하되 산업 부문의 감축률을 14.5%에서 11.4%로 낮춘 것이 핵심인데, 목표치를 높이고 독려해야 할 판에 부담을 낮춘 것은 목표 달성에 역행하는 처사다. 정부는 산업계의 현실 여건과 실현 가능성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번 조치가 산업계에 감축을 느슨히 해도 된다는 분위기를 조성할까 걱정된다.

문제는 산업계 감축분을 대체할 방안이 원자력발전 확대 외에는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외 조림 등 국제 사업이나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 등으로 감축한다는 것인데 모두 결과가 불확실하다. 언제 상용화될지도 모르는 신기술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처음 내놓은 연도별 감축목표 또한 ‘눈 가리고 아웅’ 격이다. 윤석열 정부 임기 중에는 연평균 2% 정도씩 줄이다가 다음 정부 시기에 급격히 감축량을 늘리는 식으로 총감축량의 75%를 다음 정부로 미룬 것이다. 2028년 이후엔 신기술이 상용화될 것이라고 면밀히 예측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전형적인 ‘님트’(NIMT·Not In My Term)의 행태다. “내 임기 중에는 아니야”라는, 무사안일에 무책임이다.

기후위기는 공포와 겁박으로 풀어나갈 문제가 절대 아니다. 일각에서는 화석연료 탈피가 불가능해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은 허황된 얘기라고 주장한다. 온실가스 감축 정책으로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는 시기가 2080년쯤이라 지금의 젊은 세대와 무관할 것이라고도 한다. 탄소중립 목표가 과장된 데이터로 포장된 과도한 수치로 불안만 키운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설령 그렇다 쳐도, 결국에는 눈앞에 닥친 기후위기에 대처할 방책을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목표 수치는 최우선이 아닐 수 있다. 관건은 방향과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다. 당장 급격한 감축이 절실하다는 당면 과제에 모두 공감하고 책임 있게 실천해야 한다. 정부는 이행 계획을 부단히 점검해 탄소중립 목표 달성 의지를 보여야 한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유행어를 떠올리게 해선 안 된다. 기후위기는 폭탄을 돌리는 복불복 게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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