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벌어지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의가 심상치 않다. 종교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으로 구성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폐지 범시민연대가 조례 폐지 청구를 제출한 이후 3월13일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자신의 명의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발의했고 18일에 입법예고를 했다. 교권이 추락하고 종교가 침해당하며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은 한결같은 레퍼토리다. 학생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교권은 위계에 기반한 권력이 아니고 뭘까. 종교는 학생의 권리를 부정해야 제 체면을 온전히 차릴 수 있나.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은 폐지론자들의 대표적인 논리다. 조장해서 동성애자가 됐으면 몇 번을 조장했겠지만(농담이다) 말도 되지 않는 얘기여서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더구나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말은 십수 년을 들어도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인권조례만으로 당신의 자녀가 하루아침에 동성애자가 된다는 우려일까, 인권조례가 동성애의 아름다움과 미덕을 선전하고 홍보한다는 것인가. 진정 그렇게 노출되면 동성애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혹여라도 청소년은 미숙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청소년의 판단력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다. 아니, 동성애를 조장하고 동성애자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나쁠 이유는 무엇인가. 나쁜 건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를 우려하는 이성애 정상성의 배타적인 제도와 인식 아닐까. 이성 부부가 아니면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이성애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전제야말로 이성애를 강제하고 출산의 도구로 삼는 것 아닌가. 왜 이 나라는 출산과 양육이 불가능한 노동환경과 불평등한 인식과 분배의 제도는 날로 악화시키면서 낳을 의무만 골몰하고 낳지 않을 권리는 고려사항에 넣지 않는가. 성적 방종? 오래전부터 혐오세력은 동성애를 허용하면 수간과 소아성애도 허용할 수 있다고 신나게 이야기해왔지만, 성소수자도 사리 분별쯤은 한다. 제대로 알려야 하는 것은 성적 문란을 범죄화하고 금지하는 일이 아니라 어느 상황에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 그것이 나뿐 아니라 상대의 권리까지 존중하면서 서로의 안전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성애 조장 프레임은 이성애 기반의 가족 구성과 제도들이 변하고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불안과 치부로 여기며 사방으로 휘두르는 방패처럼 작동해왔다. 차라리 교권과 정상 가족, 종교 침해를 명분으로 그간 배타적으로 누려온 기득권이 흔들릴 수 있으니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한다고 솔직하게 말하시라. 성소수자가 여전히 논란이고 합의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정작 논란을 만들고 합의를 가로막는 것은 논란과 합의를 핑계로 침묵하거나 인권정책을 무기한 연기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이들이다. 10년이 지나도록 민망하게 같은 이야기를 할 것 같으면 그냥 동성애를 조장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