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얼굴을 만져보세요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선명한 표정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정신이 번쩍 든다. 투명하고 맑은 얼굴이라고 할까. 가끔 사진 속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카메라 렌즈를 통과해도 내면에 간직한 심지가 흐려지지 않는 눈빛이 형형한 사람 말이다. 인화지 안쪽으로 사람을 잡아당기는 것 같은 강한 설득력을 지닌 얼굴들이 있다. 우리 옛 초상화를 볼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조선 영조 때 문신 서직수 초상은 당대의 초상화가 이명기가 얼굴을, 김홍도가 몸체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기술이 없던 1796년의 일이다. 서직수는 자신을 그린 초상화의 오른쪽 위편에 “이름난 화가들이지만 한 조각 내 마음은 그려내지 못하였다. 안타깝다”고 쓴다. 그러나 이 그림은 내가 본 어느 이미지보다도 쟁쟁한 빛을 뿜고 있었다.

조선 후기 초상화 기법과 인물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백지혜 작가의 전시 ‘사람을 담다’에서 서직수 초상 모사본을 본 적이 있다. 작은 전시공간이라 털끝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그의 얼굴을 관찰할 수 있었다. 18세기 말의 어떤 고품질 거울보다도 이 초상화가 그를 잘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직수가 만족하지 못했던 것은 그림의 완성도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알고자 했던 노력이 뛰어난 그림으로도 결실에 이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얼마 전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가 글을 쓰고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림을 그린 그림책 <잃어버린 얼굴>을 읽었다. 여기에도 한 남자의 얼굴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의 폴란드어 원제목은 ‘또렷한 남자(pan wyrazisty)’로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의 인생을 다룬다. 주인공은 한 번만 봐도 기억에 남을 만큼 또렷한 얼굴을 가졌다. 모든 사람이 친구라고 여길 정도로 편안한 얼굴이었다. 주인공은 그런 자신의 얼굴을 좋아해 카메라 기능이 뛰어난 휴대폰을 사고 신나서 자기 얼굴을 찍은 뒤 여기저기 올렸다. 인터넷에는 그의 얼굴들이 떠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얼굴 선이 둔해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갈수록 다른 이들의 얼굴과 구분되지 않았다. 주인공은 이 변화를 외면하려 든다.

‘또렷한 남자’는 얼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대한 선택을 한다. 올가 토카르추크의 명징한 문장들은 그 결과를 구두 발굽소리처럼 뚜벅뚜벅 들려준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이었다. 작가는 주인공이 찍은 많은 사진들을 그렸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도 사진은 있었으나 가족의 앨범 안에만 존재했던 그 사진이 미디어에 올라가면서 변화는 시작된다. 책 속에서 또렷한 남자가 또렷하지 않은 남자가 되는 과정은 사진 속 픽셀들, 불량 화소의 증가로 묘사된다. 얼굴의 명료함은 사라지고 부유하는 픽셀 속에서 본래의 존재는 자취를 감춘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요안나 콘세이요가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거장들’ 전시를 맞아 서울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강연장을 찾았다. 그가 이 책에서 보여준 마술적 리얼리즘은 무수한 손의 시도와 착오의 결과였다. 그는 휴가 중에도 연필을 놓지 않았으며 프랑스의 아르장퇴유, 폴란드의 파고지나, 이탈리아의 사르메데, 포르투갈의 오비두스에서 몇 년간 이 그림들을 그렸다. 책에는 그동안 그린 것의 극히 일부만 남았다. 셀피가 가득한 복제와 상실의 시대에 고지식할 정도로 집요한 손과 연필의 시간으로 도전 중인 요안나 콘세이요는 객석을 향해 이렇게 질문했다. “우리는 우리가 찍은 사진들을 다 보고 있는가?”

이 책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안다’는 목적으로 우리를 카메라 앞에 앉게 만든다. 나는 오늘 무엇을 찍었는가? 얼굴의 윤곽이 조금 더 둔해진 것은 아닌가? 가만히 손가락을 들어 나의 턱선을 만져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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